왓챠를 오래 써봤더니 취향 찾는 방식이 달랐다

얼마 전 지인이 영화 추천을 부탁하면서 넷플릭스에는 볼 게 너무 많은데 막상 고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때 내가 먼저 물은 건 장르가 아니라 평소 별점을 어떻게 주는지였다. 사실 왓챠는 작품 수만 보고 고르는 서비스라기보다, 내가 남긴 취향의 흔적을 바탕으로 다음 작품을 좁혀가는 쪽에 더 가깝다.
스포일러 없이 말하자면, 왓챠의 매력은 화제작을 따라가는 속도보다 취향의 밀도에 있다. 특히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본 사람일수록 이 차이가 꽤 선명하게 느껴진다.
왓챠는 많이 본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
왓챠를 처음 켜면 다른 OTT처럼 포스터가 먼저 보인다. 그런데 조금만 써보면 중심이 다르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가 브랜드와 오리지널 라인업의 힘으로 밀고 들어온다면, 왓챠는 별점 데이터와 감상 이력을 통해 개인의 취향을 더 세밀하게 잡아낸다.
영화를 10편 본 사람보다 300편, 500편 본 사람에게 더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좋아한 작품, 중간에 애매하게 느낀 작품, 이상하게 낮게 준 작품까지 쌓이면 추천의 결이 달라진다. 단순히 액션을 좋아한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액션 안에서도 건조한 범죄극을 좋아하는지, 과장된 히어로물을 좋아하는지, 인물의 피로감이 묻어나는 느린 스릴러를 좋아하는지 가르는 식이다.
왓챠가 잘 맞는 사람
왓챠는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특정한 시청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꽤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 유명한 신작보다 아직 못 본 좋은 영화를 찾고 싶은 사람
- 일본 드라마, 영국 드라마, 독립영화, 예술영화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
- 별점 남기기와 감상 기록을 즐기는 사람
- 작품을 본 뒤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해석을 함께 보고 싶은 사람
- OTT를 단순 재생 앱보다 개인 아카이브처럼 쓰고 싶은 사람
특히 왓챠피디아와 함께 쓰면 장점이 더 커진다. 내가 본 작품을 기록하고,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높게 평가한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예상 밖의 작품을 만날 확률이 올라간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영화 많이 보는 사람에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다만 기대치를 다르게 잡아야 한다
왓챠를 두고 아쉽다는 반응도 자주 본다. 가장 흔한 이야기는 최신 대형 화제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OTT 판권은 수시로 바뀌고, 대형 스튜디오 작품은 자사 플랫폼으로 모이는 흐름이 강하다. 그래서 특정 블록버스터나 최신 시즌을 바로 보고 싶다면 다른 서비스가 더 편할 때가 있다.
근데 왓챠를 그런 기준으로만 보면 장점이 잘 안 보인다. 왓챠는 대형 메뉴 하나로 배부르게 만드는 식당보다는, 메뉴판 구석에 있는 괜찮은 요리를 발견하게 해주는 곳에 가깝다. 예를 들어 모두가 이야기하는 신작 대신 2000년대 한국 멜로, 오래된 일본 청춘 영화, 평단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유럽 영화, 짧게 보기 좋은 영드 같은 쪽에서 재미가 살아난다.
추천 알고리즘보다 중요한 건 내 별점 습관
왓챠를 제대로 쓰려면 별점을 대충 누르지 않는 편이 좋다. 별점 3점은 그냥 보통인지, 다시 볼 일은 없지만 나쁘지 않은 건지, 취향은 아니지만 잘 만든 작품인지 스스로 기준을 잡아두면 추천 품질이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5점 만점 기준으로 3점은 무난하게 끝까지 본 작품, 3.5점은 누군가에게 설명할 만한 장점이 있는 작품, 4점은 특정 취향에게 적극 추천 가능한 작품, 4.5점 이상은 시간이 지나도 장면이나 감정이 남는 작품으로 둔다. 이렇게 쌓아두면 왓챠가 내 취향을 꽤 그럴듯하게 따라온다.
반대로 별점을 거의 남기지 않으면 왓챠의 장점은 절반만 쓰는 셈이다. 그냥 목록에서 골라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 서비스가 가진 진짜 재미는 내 감상 이력이 추천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에 있다.
왓챠에서 고르면 좋은 작품의 기준
왓챠에서 작품을 고를 때는 전체 인기 순위만 보지 않는 게 좋다. 인기작은 이미 다른 OTT에서도 많이 보이고, 대중적 반응이 강한 작품은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띈다. 왓챠에서는 오히려 취향 유사도가 높은 사람들의 평가, 예상 별점, 감독이나 배우 필모그래피를 같이 보는 쪽이 더 낫다.
예를 들어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러닝타임이 길지 않은 영화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고, 장르물을 좋아한다면 한국 범죄 영화와 일본 미스터리 드라마를 번갈아 보는 식으로 폭을 넓힐 수 있다. 작품 설명만 보고 고르기 애매할 때는 낮은 별점 리뷰보다 3.5점에서 4점 사이 리뷰를 보는 게 의외로 도움이 된다. 극찬과 혹평 사이에 실제 감상 포인트가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왓챠는 최신 유행을 가장 빠르게 따라가는 OTT라기보다, 이미 지나간 좋은 작품과 아직 내 취향에 닿지 못한 작품을 이어주는 서비스에 가깝다. 그래서 볼 작품을 빠르게 소비하고 싶은 사람보다, 보고 난 뒤에도 기록하고 비교하고 다음 작품을 고르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게 더 잘 맞는다. 나도 결국 왓챠를 켤 때는 대작 하나를 찾는다기보다, 이상하게 내 취향을 알고 있는 누군가의 오래된 추천장을 펼치는 느낌으로 들어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