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를 보고 나니, 왜 젠데이아가 있어도 불호가 남았는지 알겠다

얼마 전 극장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를 보고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압도당했다는 느낌보다 오래 붙잡혀 있었다는 느낌이 더 컸습니다. 유니버설 픽처스 공개 정보 기준으로 이 영화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신화 액션 대작이고,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루피타 뇽오, 젠데이아, 샤를리즈 테론까지 이름값만 보면 거의 올해의 필수 관람작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전체를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는 점도 놀란 영화답죠. 그런데 제 취향에는 이 거대한 야심이 매끈하게 감기지 않았습니다.
스케일은 큰데 감정은 멀게 느껴졌다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이 영화가 못 만든 영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적으로는 흠잡기 어렵습니다. 바다, 전장, 섬, 신전 같은 공간을 실제 풍경의 질감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고, 몇몇 장면은 확실히 극장용 이미지입니다. BBFC 기준 러닝타임이 약 173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화면의 밀도는 계속 높습니다.
문제는 그 밀도가 감정의 깊이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원래 몸으로 겪는 모험이면서 동시에 마음이 닳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인물의 내면보다 사건의 위용, 장면의 규모, 서사의 재현 쪽에 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그래서 저는 인물이 위험에 빠질 때보다, ‘이 장면을 얼마나 크게 찍었는가’를 먼저 의식하게 됐습니다. 놀란 영화에서 종종 느껴지는 장점이 여기서는 살짝 거리감으로 바뀝니다.
젠데이아의 존재감은 좋지만, 기대만큼 오래 남진 않는다
젠데이아가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최근 젠데이아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기 리듬을 가진 배우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오디세이에서도 등장할 때마다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은 있습니다. 표정 하나로 인간이 아닌 존재의 여유와 냉정함을 동시에 주는 장면이 있고, 그 부분은 꽤 인상적입니다.
다만 영화 전체가 젠데이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작품은 아닙니다. 캐릭터가 갖는 상징성은 크지만, 관객이 감정적으로 따라붙을 만큼 많은 시간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젠데이아 보러 간다’는 기대가 크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배우의 존재감은 분명한데, 영화가 그 존재감을 오래 머물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배치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놀란식 신화 해석이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
크리스토퍼 놀란은 신화를 판타지처럼 풀기보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처럼 다룹니다. 이 선택은 장점이 분명합니다. 신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인데도 화면이 붕 뜨지 않고, 모험의 무게가 현실적인 질감으로 내려앉습니다. 특히 아이맥스 상영관에서는 인물보다 세계가 먼저 다가옵니다.
그런데 신화 특유의 이상함, 기괴함, 황홀함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이 접근이 조금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괴물과 신탁과 유혹과 저주가 나오는 이야기인데도, 영화는 자주 ‘설계된 대작’처럼 보입니다. 저는 신화라면 조금 더 불가해하고,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각이 남아야 한다고 보는 편입니다. 이 작품은 그 낯섦을 통제된 장면으로 바꾸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런 분에게는 불호 가능성이 높다
- 신화적 상상력보다 인물 감정선을 더 중요하게 보는 분
- 러닝타임이 긴 영화에서 중반 리듬이 느려지면 쉽게 피로해지는 분
- 젠데이아의 분량과 캐릭터 서사를 크게 기대한 분
- 놀란 영화의 구조적 대사와 무거운 톤이 잘 맞지 않았던 분
- 모험 영화에서 경쾌함, 로맨스, 유머의 숨통을 원하는 분
반대로 듄의 장엄함, 오펜하이머의 긴장감, 인터스텔라의 압도적인 극장 체험을 좋아했던 분이라면 충분히 볼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큰 화면에서 봐야 설득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작은 화면으로 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는 점은 인정한다
제 평가는 불호에 가깝지만, 이 영화가 가진 극장용 가치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사운드가 몸을 누르는 장면, 실제 로케이션의 바람과 먼지가 느껴지는 장면, 배우들이 거대한 풍경 속에서 아주 작게 놓이는 장면은 확실히 요즘 영화에서 드문 종류의 체험입니다. 스트리밍으로 넘기며 보기에는 아까운 영화입니다.
다만 저는 좋은 대작과 좋아하는 대작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오디세이는 분명 잘 만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너무 정교하고, 너무 무겁고, 가끔은 너무 자기 확신이 강했습니다. 젠데이아와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조합만 보고 기대치를 끝까지 올리기보다는, 173분짜리 장중한 신화극을 감당할 기분인지 먼저 보는 게 맞겠습니다. 저는 한 번의 극장 체험으로 충분했고, 시간이 지나도 특정 장면보다 그 피로감이 더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