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맥스 마지막회까지 달렸더니 남은 건 통쾌함보다 찝찝한 여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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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맥스 마지막회까지 달렸더니 남은 건 통쾌함보다 찝찝한 여운이었다

요즘 장르 드라마를 보다 보면 마지막회에서 모든 죄값을 깔끔하게 배분하려는 작품이 꽤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클라이맥스〉는 조금 달랐습니다. ENA 월화드라마로 2026년 3월 16일 시작해 4월 14일 10회로 끝난 이 작품은, 제목처럼 매회 사건을 밀어붙였지만 마지막에 남긴 감정은 폭발보다 냉소에 가까웠습니다.

주지훈, 하지원, 나나, 오정세, 차주영이라는 배우 조합만 봐도 욕망극의 체급은 충분했습니다. 실제로 최종회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 3.9%로 자체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대형 히트작이라고 부르긴 어렵지만, 디즈니+ 국내 시청 순위와 TV 드라마 화제성에서 눈에 띄었던 작품이라 체감 존재감은 시청률보다 컸습니다.

클라이맥스 마지막회, 왜 이렇게 찝찝했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마지막회를 보지 않았다면 여기서 잠깐 멈추는 편이 낫습니다.

최종회는 방태섭이 권력 구조의 틈을 역이용하는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손국원을 둘러싼 정치적 판, 대양펀드 관련 증언, 황정원이 남긴 USB 복사본, 그리고 이양미가 박재상 사망 사건에 얽혀 있다는 증거가 한꺼번에 움직입니다. 사건만 나열하면 꽤 통쾌한 응징극처럼 보이지만, 드라마가 실제로 남기는 맛은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클라이맥스〉의 마지막회는 악인을 처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처벌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 역시 깨끗하지 않다는 감각을 끝까지 붙잡기 때문입니다. 방태섭은 정의로운 내부 고발자가 아니라 권력의 언어를 너무 잘 배운 사람입니다. 추상아 역시 피해자와 공범 사이에서 계속 흔들립니다. 그래서 시청자는 누가 이겼는지보다, 이 판에서 온전히 멀쩡한 사람이 있었는지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방태섭과 추상아의 관계가 만든 긴장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사건보다 관계에 있습니다. 방태섭과 추상아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로맨스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용하고, 필요할 때 손을 잡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상대의 약점까지 계산합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을 완전히 남처럼 보기도 어렵습니다.

주지훈은 방태섭의 상승 욕망을 노골적으로 연기하기보다, 이미 체념한 사람이 선택지를 고르는 얼굴로 보여줍니다. 이게 꽤 좋았습니다.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보다 조용히 판을 읽는 장면에서 더 위험해 보입니다. 하지원의 추상아는 더 복잡합니다. 화려한 스타의 몰락이라는 익숙한 설정을 가져왔지만, 단순히 불쌍한 인물로 소비되지 않습니다. 마지막회에서 추상아가 보여주는 표정들은 이 사람이 어디까지 알고 있었고 어디까지 외면했는지 계속 되묻게 만듭니다.

특히 둘이 다시 손을 잡는 듯 보이는 흐름은 호불호가 갈릴 만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짜릿한 생존 동맹으로 보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끝까지 죄를 씻지 않은 사람들의 재배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10부작 구성의 장점과 아쉬움

〈클라이맥스〉는 10부작이라는 길이를 비교적 잘 활용한 편입니다. 16부작이었다면 중반부에 권력 카르텔 설명이 늘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8부작이었다면 인물들의 배신과 선택이 너무 급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10회 안에서 정치, 재계, 연예계, 검찰 조직을 모두 엮으려는 시도는 야심이 컸고, 적어도 마지막까지 텐션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정보가 한꺼번에 풀리면서 인물의 감정보다 자료와 증거가 앞서는 순간이 있습니다. USB, 증언, 펀드, 사망 사건의 연결고리가 맞물리는 쾌감은 있지만, 몇몇 장면은 인물의 선택이라기보다 작가가 판을 접기 위해 움직이는 느낌도 납니다.

그래도 이 작품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건 배우들의 얼굴 때문입니다. 오정세와 차주영은 권력 주변부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의 습관을 보여줍니다. 나나가 맡은 황정원은 조력자 포지션에 머물지 않고, 마지막 국면에서 드라마의 방향을 바꾸는 장치를 남깁니다. 이 인물들이 조금 더 깊게 파였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장르극의 밀도를 유지하는 데는 충분히 기여했습니다.

누구에게 맞는 드라마인가

〈클라이맥스〉는 사이다 복수극을 기대하면 약간 답답할 수 있습니다.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장면보다, 나쁜 구조 안에서 더 나쁜 방식으로 살아남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명확한 선악 구도보다 회색지대 인물을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더 잘 맞습니다.

  • 정치 미스터리와 누아르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
  • 주지훈의 차가운 야심형 캐릭터를 보고 싶은 사람
  • 하지원의 센 얼굴, 균열 있는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
  • 깔끔한 해피엔딩보다 씁쓸한 여운을 선호하는 사람
  • 권력형 범죄와 연예계 이면을 엮은 이야기에 관심 있는 사람

반대로 로맨스 비중을 기대하거나, 모든 떡밥이 친절하게 설명되는 드라마를 원한다면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클라이맥스〉는 설명보다 분위기와 인물의 선택으로 밀고 가는 작품입니다. 친절하진 않지만, 그 불친절함이 장르의 냉기를 만드는 면도 있습니다.

마지막회 이후 더 떠오른 장면들

좋은 마지막회는 끝난 직후보다 하루 이틀 뒤에 더 선명해질 때가 있습니다. 〈클라이맥스〉도 그런 쪽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몇몇 전개가 빠르게 지나가 아쉽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니 방태섭과 추상아가 서로를 바라보던 장면들이 더 남았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해서 손잡은 걸까, 살아남기 위해 손잡은 걸까. 아마 둘 다일 겁니다.

그래서 〈클라이맥스〉 마지막회는 통쾌한 엔딩이라기보다, 더러운 판을 오래 들여다본 뒤 남는 피로감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점이 이 드라마의 개성이라고 봅니다. 권력극이 늘 대단한 폭로와 처벌로 끝나야 한다면 현실감은 쉽게 납작해집니다. 〈클라이맥스〉는 적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권력은 더더욱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찝찝함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마지막회까지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클라이맥스 마지막회까지 달렸더니 남은 건 통쾌함보다 찝찝한 여운이었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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