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어둠의 나날, 눈먼 세계를 끝까지 봤더니 남는 것들

얼마 전 주변에서 “애플TV+에 있는 그 제이슨 모모아 드라마 볼 만해?”라는 말을 들었는데, 바로 떠오른 작품이 SEE 어둠의 나날이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첫 장면부터 취향이 갈립니다. 설정은 강렬합니다. 먼 미래, 인류 대부분이 시력을 잃은 세계에서 ‘본다’는 능력이 신화이자 금기가 된 사회를 그리죠. 그런데 이 드라마의 재미는 단순히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싸울까”에만 있지 않습니다. 권력, 믿음, 혈연, 공포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세계를 얼마나 진지하게 밀어붙이느냐에 있습니다.
눈먼 세계라는 설정, 생각보다 허술하게 쓰지 않는다
SEE 어둠의나날을 처음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히 세계관입니다. 바이러스 이후 인류가 시각을 잃었고, 수백 년이 흐른 뒤 ‘시력’은 거의 이단처럼 취급됩니다. 이 설정은 자칫하면 액션을 위한 장식으로만 쓰일 수 있는데, 드라마는 꽤 집요하게 생활 방식까지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매듭, 소리, 냄새, 촉감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장면들이 반복됩니다.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칼을 휘두르는 방식, 적의 위치를 읽는 방식, 군대가 이동하는 방식이 우리가 익숙한 사극이나 판타지와 다릅니다. 물론 모든 장면이 완벽하게 납득되는 건 아닙니다. “저 정도 문명 유지가 가능할까?”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근데 이 드라마는 현실 고증보다 감각의 전환을 밀어붙이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 선택이 마음에 들면 꽤 몰입됩니다.
바바 보스는 제이슨 모모아의 장점을 제대로 쓴 캐릭터
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바바 보스입니다. 제이슨 모모아가 맡은 이 인물은 부족의 리더이자 아버지이고, 동시에 끊임없이 쫓기는 사람입니다. 말수가 많은 캐릭터는 아닙니다. 대신 몸의 움직임, 호흡, 침묵으로 감정을 밀어붙입니다.
특히 액션 장면에서 바바 보스는 단순히 힘센 전사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싸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의 숨소리와 발소리, 공간의 울림을 읽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칼싸움이 화려한 춤처럼 보이기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부딪히는 생존전처럼 느껴집니다. 잔혹한 장면도 꽤 있습니다. 피가 튀는 수위에 민감하다면 초반부터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취향이 갈리는 지점은 분명하다
솔직히 SEE 어둠의 나날은 누구에게나 쉽게 권할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세계관은 독특하지만 전개가 매번 빠른 편은 아니고, 왕국 간 권력 싸움이나 예언을 둘러싼 대사가 다소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판타지 장르에서 정치극의 밀도를 기대하는 분이라면 좋은 쪽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건이 쉴 새 없이 터지는 속도감을 원한다면 중간부가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인물들의 선택입니다.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합리적인 판단보다 믿음, 집착, 공포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답답함이 작품의 세계관과 맞물리기도 합니다. 시각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보이는 증거보다 전해 들은 말, 종교적 권위, 오래된 금기를 더 쉽게 믿습니다. 그 분위기를 받아들이면 인물들의 과한 선택도 어느 정도 이해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특히 잘 맞는다
- 평범한 좀비물이나 재난물보다 낯선 미래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
- 제이슨 모모아의 거칠고 묵직한 액션을 기대하는 사람
- 부족, 왕국, 예언, 금기 같은 판타지 요소를 좋아하는 사람
- 빠른 전개보다 분위기와 설정의 밀도를 즐기는 사람
- 선과 악이 단순히 나뉘지 않는 인물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
반대로 가볍게 한두 편 틀어놓고 보기에는 무거운 편입니다. 대사와 설정을 놓치면 인물 관계가 헷갈릴 수 있고, 시즌이 이어질수록 정치적 갈등의 비중도 커집니다. 그래서 식사하면서 편하게 보는 드라마라기보다는, 한두 편씩 집중해서 보는 쪽이 더 잘 맞습니다.
스포일러 없이 말하는 관전 포인트
스포일러는 피하겠습니다. 다만 관전 포인트를 하나만 잡자면, 이 드라마는 ‘시력을 가진 사람’이 영웅인지 재앙인지 계속 흔듭니다. 보통 이런 설정이면 눈을 뜬 사람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그런데 SEE 어둠의나날은 시각이라는 능력이 곧 우월함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가지 않습니다. 보는 능력은 권력이 되고, 권력은 다시 폭력을 부릅니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액션 판타지이면서도 꽤 불편한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감각 하나가 사라졌을 때 사회는 어떻게 재편될까. 그리고 모두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구원자로 볼까, 괴물로 볼까. 이런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면 이 드라마는 생각보다 오래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완성도가 고르게 매끈한 작품이라기보다, 강한 장점과 거친 단점이 같이 있는 드라마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만 요즘처럼 비슷한 세계관과 비슷한 캐릭터가 많은 시기에는 이 정도로 자기 색이 분명한 작품이 오히려 반갑습니다. SEE 어둠의 나날은 모두에게 추천할 작품은 아니지만, 어두운 판타지와 묵직한 생존극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선명하게 꽂히는 선택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