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범인 임석만으로 의심하고 봤더니 남는 건 진범보다 누명이었다

얼마 전 ENA 드라마 허수아비를 끝까지 달리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이름은 의외로 진범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검색창에 많이 보이는 말은 ‘허수아비 범인 임석만’인데, 실제로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이 문장은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임석만은 범인으로 소비되는 인물이 아니라, 범인을 만들고 싶었던 시스템이 세운 가장 비극적인 표적에 가깝습니다.
이 글은 최종회까지의 범인 정체와 임석만의 의미를 다룹니다. 아직 드라마를 보는 중이라면 여기서 멈추는 편이 낫습니다. 이 아래부터는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처음엔 임석만이 수상해 보이게 만든다
허수아비는 12부작 범죄 스릴러답게 초반부터 시청자의 의심을 계속 흔듭니다. 강태주가 과거 사건을 다시 좇는 과정에서 임석만은 충분히 의심받을 만한 얼굴로 등장합니다. 말수가 적고, 사건의 주변에 있었고, 어떤 장면에서는 감정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범죄물에서 이런 인물은 대개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영리한 지점은 바로 그 익숙한 시청 습관을 이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표정이 어둡고 설명이 부족한 인물을 보면 쉽게 의심합니다. 수사기관도 그랬고, 주변 사람들도 그랬고, 시청자 역시 한동안 그 방향으로 끌려갑니다. 임석만은 진실을 말하기 전에 이미 ‘범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꽤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드라마가 임석만을 미끼로만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어떻게 사회적 낙인을 입고, 그 낙인이 다시 증거처럼 취급되는지 천천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중반 이후부터는 ‘누가 죽였나’보다 ‘왜 이 사람이 범인으로 굳어졌나’가 더 중요해집니다.
진범은 임석만이 아니라 이용우, 본명 이기환
최종적으로 드러난 강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은 임석만이 아닙니다. 진범은 이용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인물, 본명 이기환입니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동생 이기범에게까지 누명을 씌웠고, 과거 수사의 폭력과 조작은 여러 사람의 삶을 망가뜨렸습니다.
임석만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이 장면은 통쾌한 승리라기보다 너무 늦게 도착한 사실 확인에 가깝습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법정은 ‘당신이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문장이 지워주지 못하는 세월이 너무 큽니다.
- 임석만은 진범이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쓴 인물입니다.
- 진범은 이용우로 살아온 이기환입니다.
- 이기환의 증언과 DNA 증거가 재심의 결정적 전환점이 됩니다.
- 드라마의 관심은 범인 맞히기보다 잘못된 수사가 만든 피해에 더 가까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범인 찾기에서 멈추지 않는 이유
많은 범죄 스릴러는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긴장이 풀립니다. 그런데 허수아비는 조금 다릅니다. 진범을 알게 된 뒤에도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악은 한 명의 살인자만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시영을 비롯한 권력자들은 사건을 해결했다는 모양새, 자신의 커리어, 조직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밀어냅니다. 형사 강태주 역시 완전히 깨끗한 관찰자로 남지 않습니다. 그는 잘못된 시대, 부족한 수사 환경, 조직의 압력 속에서 판단을 놓쳤던 인물입니다. 드라마는 그를 영웅으로만 세우지 않고, 뒤늦게라도 직면해야 하는 사람으로 둡니다.
그래서 임석만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그는 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수상한 용의자’의 자리에 서 있지만, 끝까지 보면 그 자리는 사실 피해자의 자리였습니다. 제목인 허수아비도 여기서 힘을 얻습니다. 누군가가 세워놓은 가짜 표적. 사람들이 돌을 던지기 쉽도록 만들어진 사람. 임석만은 그런 의미에서 작품의 가장 아픈 상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맞는 드라마인가
허수아비는 빠른 전개와 반전만 원하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재미를 줍니다. 12부작 구성이라 늘어지는 구간이 길지 않고, 중반부부터 용의자 구도가 빠르게 흔들립니다. 다만 이 작품의 진짜 무게는 사건 풀이보다 감정의 잔상에 있습니다.
특히 살인의 추억 같은 실화 기반 범죄물의 공기, 혹은 시그널처럼 과거의 잘못이 현재를 압박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면 잘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매회 시원한 응징, 깔끔한 처벌, 악인의 몰락을 기대한다면 답답할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 쉽게 회복되지 않는 피해를 그대로 남겨둡니다.
- 추천: 묵직한 범죄 스릴러, 재심 서사, 누명 피해자 이야기, 수사물의 윤리적 질문을 좋아하는 사람
- 주의: 가혹 수사, 연쇄살인, 사법 피해를 다루는 장면이 불편할 수 있는 사람
- OTT 감상 포인트: 지니 TV와 TVING에서 이어 보기 좋은 12부작 구조
임석만을 범인으로 검색한 뒤 보게 되는 것
‘허수아비 범인 임석만’이라는 키워드는 드라마의 장치를 정확히 건드립니다. 시청자는 임석만을 의심하며 들어오지만, 결국 그 의심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게 됩니다. 범죄물에서 범인을 맞히는 쾌감은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쾌감을 살짝 비틀어, 우리가 너무 쉽게 누군가를 범인으로 상상하는 순간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저는 허수아비를 완벽한 장르물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임석만이라는 인물을 남긴 방식만큼은 꽤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진범의 이름보다 누명을 쓴 사람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남는 드라마. 그 찝찝함을 피하지 않는 쪽이 이 작품의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