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논란이 찜찜하게 남는 이유, 보고 나서 더 무서웠던 다큐 후기

얼마 전 주변에서 “영화 암살자들 논란이 뭐였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저는 이 작품을 떠올릴 때마다 먼저 장르부터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제목만 보면 범죄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김정남 피살 사건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총격전이나 추격전보다 더 서늘한 건, 화면 속 두 여성이 정말 자신이 어떤 일에 휘말렸는지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입니다.
논란의 중심은 ‘가해자인가, 이용당한 사람인가’였다
이 사건은 워낙 충격적인 방식으로 알려졌습니다. 공개된 공항 CCTV에는 두 여성이 김정남에게 접근하는 장면이 담겼고, 말레이시아 당국은 사용된 물질이 VX 신경작용제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사건은 단순해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바로 그 단순함을 의심합니다.
작품이 집중하는 인물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과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입니다. 두 사람은 장난 영상이나 몰래카메라 촬영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이들이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의 장난 영상을 찍었다는 정황, 남성들에게 접근해 얼굴에 무언가를 바르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연습된 과정,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북한 관련 인물들의 움직임을 차근차근 배치합니다.
논란은 여기서 생깁니다. 누군가는 “아무리 몰랐다 해도 사람을 죽인 행위에 참여한 것은 맞다”고 봅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국가 단위 공작에 취약한 이주 여성들이 소모품처럼 쓰인 사건”이라고 읽습니다. 영화는 두 입장을 노골적으로 판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이 불편할 정도로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영화가 북한을 다루는 방식도 예민했다
‘암살자들’이 더 뜨거웠던 이유는 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김정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으로 알려져 있었고, 사건 직후 국제 언론은 정치적 암살 가능성을 크게 다뤘습니다. 영화 역시 북한 요원으로 의심받은 남성들의 출국,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빈틈, 외교적 긴장까지 함께 보여줍니다.
다만 이 작품은 음모론식으로 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갑게 자료를 쌓는 편입니다. CCTV, 법정 기록, 가족 인터뷰, 변호인과 취재진의 증언이 번갈아 나오면서 “이 사건은 왜 이렇게 설계됐나”라는 쪽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래서 더 묵직합니다. 분노를 끌어올리기보다, 사건이 작동한 구조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근데 이 지점이 관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어떤 관객에게는 북한 정권 비판 다큐로 보이고, 어떤 관객에게는 사법 절차와 언론 보도의 문제를 건드린 작품으로 보입니다. 저는 둘 다 맞는 독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스릴러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약한 개인이 거대한 시스템 사이에서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묻는 작품에 더 가깝습니다.
‘여성 피고인에게 너무 감정이입한 것 아니냐’는 시선
이 영화에 따라붙은 또 하나의 논란은 피해자보다 피고인들의 사연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는 점입니다. 실제 사건에는 사망자가 있습니다. 김정남이라는 피해자가 있고, 그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소비된 측면도 큽니다. 그런데 영화는 상당한 분량을 두 여성의 성장 배경, 경제적 상황, 영상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맥락에 할애합니다.
이 선택은 분명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범죄 행위의 무게가 흐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품이 하려는 일은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왜 하필 이들이었나”를 묻는 데 있습니다. 돈이 필요했고,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기회처럼 여겼던 젊은 여성들. 그 취약함이 누군가에게는 범행 도구로 보였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차가운 대목입니다.
- 범죄 실화 다큐를 좋아하지만 자극적인 재연 장면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맞습니다.
- 정치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와 구조적 착취에 관심이 많은 관객에게 잘 맞습니다.
- 피해자 중심 서사를 기대했다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북한 관련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 민감한 국제정치 맥락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무거울 수 있습니다.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진짜 장르는 법정과 취재의 긴장감
영화의 재미를 말하자면, 빠른 반전보다 취재의 압박감에 있습니다. 이미 결과를 어느 정도 알고 봐도 긴장감이 유지됩니다. 왜냐하면 관객이 알고 싶은 건 “누가 죽였나”가 아니라 “어디까지 알고 있었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갑니다.
법정 장면과 인터뷰가 이어지는 구성이라 호흡은 차분합니다. 폭발적인 장면을 기대하면 밋밋할 수 있습니다. 대신 작은 표정, 진술의 차이, 변호인의 말투, 가족이 기억하는 피고인의 모습 같은 디테일이 쌓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 절제된 방식이 더 세게 다가올 가능성이 큽니다.
비슷한 결을 찾는다면 넷플릭스식 범죄 다큐의 빠른 편집보다는, 한 사건을 국제정치와 사법 시스템 안에서 뜯어보는 탐사 보도형 다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밤에 가볍게 틀어놓고 딴짓하며 보기엔 맞지 않습니다. 대사와 자막을 놓치면 중요한 뉘앙스가 빠집니다.
스포 경고: 재판 결과를 알고 보면 다르게 보인다
여기부터는 사건의 실제 흐름을 일부 언급합니다. 스포를 피하고 싶다면 작품을 먼저 보는 쪽이 낫습니다.
두 여성은 모두 사형 가능성이 있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최종적으로는 각기 다른 절차를 거쳐 석방 또는 감형 뒤 귀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외교적 협상, 검찰 판단, 변호 전략이 복잡하게 얽혔습니다. 영화는 이 대목을 통해 법이 진실을 완전히 복원하지는 못한다는 씁쓸함을 남깁니다.
개인적으로 ‘암살자들’의 논란은 작품이 편향적이냐 아니냐보다, 우리가 사건을 얼마나 빠르게 단순화하는지에 더 닿아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를 악인으로 부르면 마음은 편해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편안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죽었고, 두 여성의 삶도 망가졌고, 정작 설계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화면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 찜찜함이 이 다큐가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