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드라마 결말을 보고 출근길이 달라 보였다

드라마를 오래 보다 보면 로또에 당첨된 직장인의 다음 장면은 쉽게 떠오른다.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나서는 장면이다. 그런데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의 공은태는 13억 원을 손에 쥐고도 다시 사원증을 건다. 처음엔 그 선택이 답답했다. 10회까지 보고 나니, 이 드라마가 궁금해한 건 퇴사 여부보다 돈이 생긴 사람이 직장에서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느냐였다.
아래부터는 마지막 9·10회의 주요 사건과 인물들의 행방이 나온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여기서 멈추는 편이 좋다.
로또 1등인데 왜 끝까지 출근할까
공은태는 홍성인터내셔널 영업 5팀의 팀장이다. 팀장이라는 직함과 달리 위에서는 실적 압박을 받고, 아래에서는 팀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다른 부서가 떠넘긴 일까지 받아내던 그에게 로또 1등 당첨금 13억 원이 생긴다. 당장 사표를 낼 수 있을 만큼 큰돈이지만, 앞으로의 삶을 아무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은태도 망설인다.
그래서 은태는 출근을 택한다. 대신 예전처럼 모든 일을 삼키지는 않는다. 회사가 짜 놓은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영업 5팀이 직접 성과를 낼 길을 찾는다. 돈이 그를 갑자기 뛰어난 팀장으로 만든 건 아니다. 7회에서는 자신의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도 마주한다. 통장 잔고가 바뀌어도 관계를 풀어가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는 대목이 이 작품을 현실에 붙들어 둔다.
마지막 승부는 은태 혼자 끝내지 않는다
후반부의 위기는 경쟁사 CGM의 한국 진출에서 시작된다. 홍성의 거래처들이 흔들리고, 은태의 옛 사수였던 정선혁은 이제 상대편에서 압박한다. 홍성은 만토바와 손잡고 돌파구를 만들려 하지만, 협상 상대 마르티나의 마음을 얻는 일도 쉽지 않다. 마지막 두 회는 로또 당첨금을 어디에 쓸지보다 이 거래를 누가 어떻게 성사시키는지에 시간을 쓴다.
여기서 기억에 남는 사람은 계약직 사원 이지혜다. 마르티나의 의전을 맡은 지혜는 계속되는 무리한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정중하게 선을 긋는다. 마르티나는 그 태도를 좋게 보고, 만토바와의 계약도 성사된다. 양준호 역시 정선혁의 전략을 거꾸로 이용하며 힘을 보탠다. 홍성은 CGM과 백화점을 상대로 한 승부에서 이긴다. 초반에는 서로 부딪치기 바빴던 5팀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몫하는 흐름이라, 은태 한 사람의 활약으로 끝났다면 얻기 어려웠을 만족감이 있다.
이지혜의 앞날이 남기는 씁쓸함
사업을 구한 뒤 영업 5팀에는 승진 소식이 찾아온다. 은태는 대표에게 지혜의 정규직 전환을 부탁한다. 협상에 기여한 만큼 이번에는 회사가 응답하리라 기대하게 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고, 지혜의 계약은 끝난다. 팀이 함께 이겼어도 그 성과가 모두에게 같은 보상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다행히 지혜에게는 만토바에서 일할 기회가 열린다. 마르티나 앞에서 보여 준 태도가 다른 가능성으로 이어진 셈이다. 따뜻한 전개지만 마음이 아주 개운하지는 않다. 지혜의 능력을 가장 가까이서 본 회사가 그를 붙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새 길이 열렸다는 사실과 회사의 결정이 아쉽다는 감정은 함께 남는다. 이 작은 불편함 덕분에 마지막의 승진 장면도 마냥 축하로만 보이지 않는다.
같은 출근길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유
은태는 결국 퇴사하지 않는다. 마지막에도 동료들과 출근한다. 로또 1등 당첨자가 계속 회사를 다닌다는 결과만 보면 첫 회의 설정에서 멀리 오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혼자 버티던 사람이 이제는 준호와 지혜를 비롯한 팀원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자신의 선택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생각한다. 마지막 출근길의 표정이 달라 보이는 이유다.
10부작인 이 드라마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통쾌한 퇴사 판타지를 기대했다면 회사의 위기와 협상에 쏟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직장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조금씩 달라지는지 보는 걸 좋아한다면 잘 맞는다. 특히 은태가 돈을 가진 뒤에도 실수하고 사과하는 과정, 지혜가 거래처 앞에서 자기 선을 지키는 장면이 오래 남는다.
나는 이 작품의 마지막을 보고 로또 당첨보다 선택할 여지가 생기는 순간을 더 오래 생각했다. 은태에게 13억 원은 회사를 떠나는 표가 아니라, 남아 있는 동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 여유였다. 출근길은 그대로여도 그 길을 걷는 마음까지 같을 필요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