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드라마 결말을 다시 보니 심장이 남았다

얼마 전 ‘펀치’를 다시 떠올리다가 마지막 장면보다 먼저 박정환이 사람을 몰아붙이던 초반 장면이 생각났다. 이태준을 검찰총장 자리에 올리려고 수단을 가리지 않던 검사. 그런 인물이 마지막에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이 드라마의 끝이 오래 남는 이유는 정환의 죽음 자체보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붙든 선택에 있다.
아래에는 19회 마지막 방송의 주요 사건과 인물들의 운명이 모두 나온다. 아직 작품을 볼 생각이라면 여기서 멈추는 편이 좋다.
마지막까지 판을 뒤집은 것은 작은 메모리 카드였다
윤지숙이 신하경을 차로 들이받은 사건은 마지막 회의 중심에 놓인다. 사고가 담긴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환은 마지막 힘을 쓴다. 윤지숙은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 하고, 이태준 역시 권력을 지키려는 계산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구에게 증거가 넘어가느냐에 따라 판이 다시 뒤집힐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정환은 예전처럼 증거를 거래의 패로만 쓰지 않는다. 이태준이 증거를 최연진에게 넘기고, 연진이 이를 기자들 앞에 공개하면서 윤지숙의 범행이 드러난다. 정환은 끝내 윤지숙과 이태준이 자신들의 행위에 책임지도록 만든다. 화려한 폭로보다 인상적인 것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증거가 묻히지 않게 붙든 정환의 집요함이다.
박정환은 죽고 신하경은 그의 심장으로 살아난다
정환은 마지막 쇼크 뒤 뇌사 상태에 빠진다. 교통사고로 생명이 위태로웠던 하경은 정환의 심장을 이식받아 살아난다. 그래서 ‘펀치’의 끝은 정환이 병을 이겨내고 가족과 재회하는 장면으로 가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끝나지만, 하경과 딸 예린에게는 살아갈 시간이 이어진다.
이 장면을 단순한 희생담으로만 보면 조금 아쉽다. 정환은 처음부터 정의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출세를 위해 하경의 수사를 막았고, 딸의 양육권까지 압박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런 과거가 심장 이식 한 번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쥐고 있던 것을 권력을 위해 쓰지 않는다. 저는 바로 그 변화가 눈물보다 더 오래 남았다.
권력자들의 몰락 뒤에도 하경의 일이 남는다
하경은 살아난 뒤 다시 검사로 선다. 윤지숙의 살인미수 사건을 다루는 법정에서 윤지숙뿐 아니라 이태준, 이호성, 조강재가 저지른 일에도 책임을 묻는다. 정환이 증거를 밖으로 꺼내는 데 목숨을 걸었다면, 하경은 그 뒤에 법이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이 구도가 좋았던 건 정환 한 사람의 각성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그리지 않아서다. ‘펀치’에서 권력은 한 명을 쓰러뜨리면 끝나는 상대가 아니었다. 서로 적대하던 사람들이 필요할 때 손을 잡고, 법을 말하던 사람도 자기 범행 앞에서는 법을 비틀었다. 마지막 법정이 주는 후련함은 그래서 앞선 18회 동안 쌓인 답답함과 함께 온다. SBS가 전한 마지막 회의 말처럼 작품이 내세운 문장은 ‘법은 하나’다. 그 말이 인물마다 다르게 적용되던 세계를 끝까지 지켜본 뒤라 더 무겁게 들린다.
이 결말이 잘 맞는 시청자
정치·법정 드라마에서 누가 누구를 이겼는지보다, 사람이 권력 속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고 싶다면 ‘펀치’가 잘 맞는다. 정환과 이태준의 관계는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두 사람이 믿음과 배신을 오가기에 마지막 대립도 힘을 얻는다. 김래원의 정환과 김아중의 하경을 함께 봐야 가족 이야기와 검찰 이야기가 한 줄로 이어진다.
반면 주인공의 잘못이 분명하게 용서받거나, 모든 갈등이 따뜻한 재회로 끝나기를 기대한다면 이 마지막은 쓰릴 수 있다. 정환은 목숨을 잃고 하경과 예린은 그 부재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작품은 남겨진 사람들을 멈춰 세우지 않는다. 권력을 좇던 정환이 끝내 지키려 한 것이 자리나 이름이 아니라 두 사람이 살아갈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저는 이 마지막을 오래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