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 드라마를 다시 골라보니 취향이 보였다

주말 밤에 드라마 한 편만 틀어두려다 예고편만 몇 개 보고 잠든 적이 있다. 볼 작품이 없어서가 아니다. 같은 tvn 토일 드라마라도 어떤 작품은 인물 사이의 온기에 오래 머물고, 어떤 작품은 다음 회를 누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영화와 드라마를 1000편 넘게 보며 느낀 건, 평점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감정의 속도를 먼저 고르는 편이 실패가 적다는 것이다.
아래 작품들은 모두 방영을 마친 tvN 토일 드라마다. 이야기의 출발점과 감상할 때 느껴지는 결만 다룬다. 주요 반전과 마지막 장면에 관한 스포일러는 없다.
편안하게 머물고 싶다면 갯마을 차차차
지친 주말에 사건이 쉼 없이 터지는 드라마는 오히려 피곤하다. 그럴 때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16부작 <갯마을 차차차>다. 도시에서 온 치과의사 윤혜진과 바닷마을 공진의 홍반장 홍두식이 부딪히며 가까워진다. 로맨스의 설렘도 있지만, 이 드라마의 인상은 두 사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웃이 서로의 일에 참견하고 밥을 챙기는 풍경이 공진이라는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든다.
그래서 연애 이야기보다 동네 사람들의 관계를 보는 재미가 필요한 사람에게 잘 맞는다. 한 회를 보고 나면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보다, 이 사람들이 함께 사는 방식이 기억에 남는다. 다만 처음부터 강한 사건이나 빠른 전개를 원한다면 호흡이 느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가볍게 웃기만 하는 작품도 아니다. 뒤로 갈수록 인물들이 품어온 아픔이 드러나므로, 마냥 밝은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마음의 여유를 두고 보는 편이 좋다.
감정을 크게 쓰고 싶다면 눈물의 여왕
<눈물의 여왕>은 결혼 3년 차 부부인 홍해인과 백현우의 위기에서 출발한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함께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바라보는 이야기라는 점이 눈에 띈다. 재벌가와 시골 가족이라는 대조적인 배경도 두 사람의 갈등에 웃음과 소란을 더한다. 16부작이라 주말 동안 한 번에 보기에도, 하루 두세 회씩 나눠 보기에도 분량이 적당하다.
이 작품을 권할 때는 로맨스가 얼마나 달콤한가보다 감정의 진폭을 먼저 말한다. 웃다가 금세 울컥하고, 한동안 멀어진 듯한 두 사람에게 다시 마음이 가는 흐름을 좋아한다면 잘 맞는다. 반대로 현실적인 부부 이야기만 기대하면 극적인 사건들이 과하다고 느낄 수 있다. 감정에 깊이 빠져들 준비가 된 밤에 틀었을 때 매력이 더 선명해지는 드라마다.
배우가 무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고 싶다면 정년이
12부작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을 배경으로, 타고난 소리 재능을 지닌 윤정년이 배우를 꿈꾸는 과정을 따라간다. tvN의 작품 소개처럼 경쟁과 연대가 함께 놓인 성장극이다. 누가 더 뛰어난가를 겨루는 장면도 힘이 있지만, 내 눈에는 재능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까지 흔들리는 시간이 더 오래 남았다.
무대에 오르기 전 연습하고, 다른 배우의 실력 앞에서 작아졌다가 다시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 촘촘하다. 공연 장면에서는 노래와 연기가 인물의 감정을 이어받아 터진다. 음악이나 공연을 좋아하거나, 성공한 뒤의 박수보다 그 앞의 시행착오에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다만 편하게 틀어놓는 로맨스를 찾는다면 집중력이 꽤 필요한 작품이다. 인물의 선택과 관계를 따라갈수록 무대 장면이 더 크게 다가온다.
통쾌한 전개가 필요하다면 빈센조
주말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털고 싶다면 20부작 <빈센조> 쪽이다.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에서 일하던 변호사 빈센조가 한국에 와서 거대한 악에 맞선다. 법정극의 긴장감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금가프라자 사람들의 익살스러운 호흡을 섞는다. 진지한 장면 다음에 예상 밖의 웃음이 들어오는 리듬이 이 작품의 개성이다.
불의를 상대로 한 방씩 되갚는 이야기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다음 회를 이어 보기 쉽다. 다만 악당을 상대하는 방식이 거칠고, 유머도 과장된 편이다. 차분하고 현실적인 수사극을 기대했다면 온도가 맞지 않을 수 있다. 내 기준에는 주인공의 능력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점차 한편이 되는 과정이 더 재미있었다. 20회까지 달릴 생각이라면 처음 몇 회에서 그 관계의 리듬이 맞는지 보는 게 좋다.
같은 tvn 토일 드라마라는 이름 아래 있어도 네 작품이 남기는 감각은 꽤 다르다. 쉬고 싶은 밤에는 공진의 골목이, 한껏 울고 싶은 밤에는 해인과 현우의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무언가에 다시 몰두하고 싶을 때는 정년이의 무대가, 답답함을 풀고 싶을 때는 빈센조의 소란이 어울린다. 좋은 드라마를 고르는 기준은 남들이 준 별점보다 오늘 내 마음이 어느 장면에 머물고 싶은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