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작 영화 드라마를 다시 골라봤더니

얼마 전 친구가 소설 원작 작품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했다. 떠오르는 제목은 많았는데, 막상 하나를 고르려니 먼저 물어야 할 게 있었다. 긴 이야기에 몰입하고 싶은지, 두 시간 안에 끝나는 영화를 원하는지. 1000편 넘게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따라오면서 느낀 건, 원작의 명성보다 지금 보고 싶은 감정에 맞춰 고를 때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뚜렷하게 다른 네 작품을 골랐다. 아래 내용은 이야기의 출발점까지만 다룬다.
작은 아씨들, 익숙한 이야기가 새롭게 보이고 싶을 때
그레타 거윅의 2019년 영화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네 자매가 자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도 영화는 신선하다.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뒤의 시간을 오가면서, 같은 사람의 선택이 나이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조의 당찬 모습에 눈이 가다가도, 다시 보면 에이미의 현실적인 판단이 오래 남는다.
이 영화가 잘 맞는 사람은 인물들 사이의 온도와 대화를 좋아하는 쪽이다. 큰 사건이 쉴 새 없이 터지는 작품을 찾는다면 호흡이 느긋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자매마다 원하는 삶이 다르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부딪힌다는 점이 좋다. 원작을 읽었다면 영화가 어떤 장면을 나란히 놓았는지 보는 재미도 있다. 책을 몰라도 인물의 관계를 따라가는 데 무리는 없다.
나를 찾아줘, 불편해도 끝까지 보게 되는 스릴러
길리언 플린의 소설을 데이비드 핀처가 영화로 만든 <나를 찾아줘>는 결혼기념일에 아내가 사라지면서 시작한다. 경찰의 수사와 언론의 관심 속에서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2시간 28분이라는 상영 시간이 짧지는 않은데,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마다 앞선 장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집중력이 이어진다.
반전의 종류나 위치를 알고 보면 재미가 크게 줄어드는 작품이라 줄거리는 여기서 멈추는 편이 낫다. 범인을 맞히는 놀이보다 인물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고, 타인의 시선이 그 모습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심이 있다면 더 흥미롭다. 다만 관계의 어두운 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분위기도 차갑다. 편안한 밤에 가볍게 볼 영화를 찾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렵다.
삼체, 거대한 질문을 따라가는 드라마가 끌릴 때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는 류츠신의 소설 3부작을 바탕으로 한다. 첫 시즌은 8부작이다. 1960년대 중국의 한 사건에서 출발해 현재의 과학자들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을 연결한다. 과학 개념을 모두 이해해야 재미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눈앞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됐을 때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심에 있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인물과 사건을 다시 배치한 방식이 먼저 보일 것이다. 반대로 책의 방대한 설정이 부담스러웠다면 드라마의 인물들을 따라가며 세계에 들어가는 편이 수월하다. 수수께끼가 한 회마다 시원하게 풀리는 형식은 아니고, 첫 시즌이 이야기 전체의 끝도 아니다. 긴 호흡의 SF와 인간관계가 함께 있는 작품을 원할 때 고르면 좋다. 넷플릭스 공식 소개에서도 원작의 인물과 장소, 사건의 순서를 각색했다고 밝힌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건보다 여운이 중요한 날
앙드레 애치먼의 소설을 영화화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1983년 이탈리아의 여름을 배경으로 엘리오의 첫사랑을 그린다. 이 영화의 매력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빨리 알려주는 데 있지 않다. 말을 꺼내기 전의 망설임, 함께 있는 시간이 끝나 간다는 감각을 햇빛과 음악, 배우의 표정으로 쌓는다. 대사가 적은 순간에도 인물의 마음을 읽는 재미가 있다.
빠른 전개를 좋아한다면 지나치게 느리다고 느낄 수 있다. 반면 계절이나 장소가 감정의 일부처럼 남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오래 기억될 작품이다. 원작과 영화 중 어느 쪽을 먼저 만나도 괜찮지만, 영상으로 시작하면 책에서 엘리오의 속마음을 더 길게 따라갈 수 있다. 넷 중 지금 한 편을 고른다면, 포근한 인물극은 <작은 아씨들>, 팽팽한 긴장은 <나를 찾아줘>, 오래 붙잡을 이야기는 <삼체>, 조용한 여운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쪽이다. 같은 소설 원작이라도 화면에서 살아나는 감정은 이렇게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