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 드라마 ost 다시 들으니 사랑보다 기다림이 남았다

오랜만에 박용하의 ‘처음 그 날처럼’을 들었는데, 노래보다 먼저 떠오른 건 누군가를 기다리던 드라마의 공기였다. 2003년 방영된 SBS ‘올인’은 김인하와 민수연의 사랑을 카지노를 둘러싼 승부와 함께 그렸다. 화면은 크고 사건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올인 드라마 ost가 오래 붙잡아 둔 감정은 의외로 조용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자리에 머물 수 없을 때의 마음이다.
처음 그 날처럼만 기억한다면
‘처음 그 날처럼’은 이 OST의 입구로 가장 좋다. 박용하의 목소리는 감정을 세게 밀어붙이기보다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듯하다. 그래서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극적인 재회보다 헤어진 뒤에도 끝나지 않은 시간이 먼저 생각난다. 인하와 수연의 관계를 아직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발라드로 들리지만, 드라마를 본 사람에게는 제목 속 ‘처음’이 조금 다르게 남는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더라도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만 대표곡 한 곡으로 앨범 전체를 판단하면 아쉽다. 지니뮤직에 등록된 2003년 발매 OST에는 보컬곡과 연주곡이 함께 실려 있다. ‘처음 그 날처럼’이 인물의 마음을 직접 말한다면, 연주곡은 그 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순간의 여백을 채운다. 드라마를 다시 볼 시간이 없을 때도 앨범 순서대로 들으면 승부의 긴장과 멜로의 정서가 번갈아 밀려오는 구성이 느껴진다.
사랑 노래 사이에 놓인 승부의 음악
첫 곡 ‘All In Theme (Orchestra Ver.)’는 제목부터 작품의 규모를 앞세운다. 인하의 인생을 연애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다는 예고처럼 들린다. 반면 ‘수연 Theme’와 ‘재회 (Violin)’는 앨범의 시선을 두 사람 사이로 돌린다. 특히 ‘재회’라는 제목은 단순히 다시 만나는 기쁨보다, 그때까지 각자가 견뎌 온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곡명을 따라 들으면 OST가 이야기의 큰 줄기와 사적인 감정을 어떻게 오가는지 보인다.
뒤쪽에 놓인 ‘Run (Rock #1)’과 ‘Fight (Rock #2)’도 빼놓기 어렵다. 둘 다 짧은 연주곡이지만, 잔잔한 발라드만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틈을 낸다. ‘올인’은 사랑 이야기이면서 선택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긴장감 있는 곡 다음에 서정적인 곡을 들으면 인물들이 왜 평온한 순간을 오래 누리지 못했는지가 감각적으로 전해진다. 음악만 틀어 두려는 사람보다 드라마의 굴곡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사람에게 앨범 전체 감상이 잘 맞는 이유다.
어떤 취향이라면 오래 들을까
2000년대 초반 한국 드라마 특유의 짙은 감정을 좋아한다면 ‘처음 그 날처럼’에서 시작하면 된다. 반대로 가사가 감상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게 부담스럽다면 ‘수연 Theme’나 ‘재회 (Violin)’ 같은 연주곡부터 듣는 편이 좋다. 보컬곡을 더 듣고 싶다면 야르즈의 ‘괜찮아요 난’과 ‘처음이 마지막처럼’으로 이어 가면 된다. 같은 작품의 음악이어도 목소리가 바뀌면 인물의 마음을 바라보는 거리도 달라진다.
드라마 자체는 지금의 빠르고 담백한 로맨스를 기대하는 사람보다, 우연과 엇갈림까지 크게 받아들이는 멜로에 익숙한 사람에게 맞는다. 이병헌의 인하와 송혜교의 수연을 중심에 두되 지성이 연기한 정원까지 관계에 얽히면서, 한 사람의 진심만으로 모든 일이 풀리지는 않는다. 그런 전개가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답답함을 지나 인물이 무엇을 포기하고 기다리는지 따라가는 게 ‘올인’의 감상법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이야기의 방향만 짚었고, 이후 전개를 알아야 하는 장면은 적지 않았다.
다시 듣는 순서가 기억을 바꾼다
대표곡만 찾는다면 ‘처음 그 날처럼’ 한 곡이면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곡을 듣고 드라마까지 다시 떠올리고 싶다면 ‘All In Theme’로 시작해 보컬곡, ‘수연 Theme’, ‘재회 (Violin)’ 순서로 이어 듣는 편을 권한다. 먼저 큰 이야기를 떠올리고 나서 두 사람의 시간을 좁혀 보는 흐름이다. 실제 앨범은 17곡, 약 46분이라 한 번에 듣기에도 부담이 크지 않다.
나는 이 OST를 들을 때마다 ‘올인’의 화려한 승부보다 기다리는 얼굴들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노래가 드라마를 대신 설명해서가 아니다. 한 장면이 끝난 뒤에도 인물에게 남았을 법한 시간을 음악이 조금 더 들려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