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후보를 다시 보니 내 취향이 보였다

얼마 전 영화 한 편을 고르려다 제46회 청룡영화상 후보 명단을 다시 펼쳤다. 작품상 후보 다섯 편을 나란히 놓으니 ‘올해의 영화’보다 ‘오늘 내게 맞는 영화’가 먼저 보였다. 같은 후보라도 웃고 싶은 날 고를 작품과 조용히 집중하고 싶은 날 고를 작품은 꽤 다르다.
시점부터 짚고 가자. 2026년 10월 25일 현재 제47회 청룡영화상은 후보를 선정하는 투표 단계다. 아래에서 말하는 확정 후보는 2025년 제46회 명단이다. 올해 투표 대상에 오른 작품을 이미 최종 후보로 호명된 작품처럼 받아들이면 영화를 고를 때도 정보가 엇갈린다.
작품상 후보 다섯 편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제46회 최우수작품상 후보는 ‘어쩔수가없다’, ‘얼굴’, ‘좀비딸’, ‘파과’, ‘하얼빈’이었다. 청룡영화상 발표 기준으로 ‘어쩔수가없다’는 12개 부문에 올라 가장 많은 후보 지명을 받았고, ‘얼굴’은 10개, ‘하얼빈’은 8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숫자만 보면 앞의 세 편부터 손이 갈 수 있다. 그런데 후보에 많이 올랐다는 사실은 취향과 별개다. 다섯 편을 고를 때는 이야기의 무게와 내가 보고 싶은 감정을 함께 보는 편이 정확하다.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어쩔수가없다’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을 따라가며 해고된 인물의 절박함이 어디까지 변하는지 지켜보는 작품이다. 상황에는 웃음기가 있는데, 웃고 난 뒤 남는 감정은 가볍지 않다. 블랙코미디를 좋아하고 인물의 불편한 선택까지 곱씹는 편이라면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반대로 퇴근 후 마음 편히 웃을 영화를 찾는 날에는 다른 후보가 나을 수 있다.
사람 이야기에 끌린다면 얼굴과 파과
‘얼굴’은 오래전 사라진 어머니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아들이 그의 삶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다. 사건의 답도 궁금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한 사람을 기억하고 판단하는 방식이 더 오래 남는다. 빠른 반전보다 이야기가 드러날수록 관점이 달라지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는다. 다만 실종과 죽음을 중심에 둔 만큼 가벼운 추리극을 기대했다면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 조각을 앞세운다. 이혜영이 연기하는 인물의 몸과 표정을 따라가다 보면 액션의 속도보다 세월을 견딘 사람이 무엇을 붙잡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젊은 킬러와 맞서는 장르적 긴장감도 있다. 익숙한 킬러 영화의 구도를 조금 다르게 보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다. 다만 폭력 장면에 예민하다면 관람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두 작품 모두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람의 재미를 만든다. ‘얼굴’은 누군가를 둘러싼 말들을 의심하게 하고, ‘파과’는 나이 든 주인공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던 자리를 보여준다. 미스터리를 따라 생각하고 싶으면 전자, 배우의 존재감과 액션을 함께 보고 싶으면 후자에 손이 갈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야기의 출발점만 이야기했다. 두 작품의 진상을 바꾸는 전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적지 않았다.
함께 볼 영화라면 좀비딸, 묵직한 역사극이라면 하얼빈
‘좀비딸’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설정은 기발하고 가족 사이의 감정은 친숙하다. 다섯 후보 가운데 여럿이 모여 볼 작품을 고른다면 먼저 떠올릴 만하다. 웃음과 가족극을 함께 기대하는 사람에게 특히 맞는다. 다만 좀비 소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에게까지 무조건 편한 가족 영화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얼빈’은 안중근과 독립운동가들이 하얼빈으로 향하는 시간을 그린다. 결과를 알고 보는 역사적 사건이라도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두려움과 결심이 화면을 붙든다. 현빈의 남우주연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큰 화면에 어울리는 촬영과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만족도가 높을 편이다. 가벼운 첩보 활극이나 빠른 전개만 기대하면 호흡이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후보 명단을 볼 때 내가 먼저 고르는 기준
후보작을 한꺼번에 밀린 숙제처럼 볼 필요는 없다. 나는 먼저 오늘 원하는 감정을 고른다. 쓰고 불편한 웃음은 ‘어쩔수가없다’, 이야기의 빈칸을 따라가는 재미는 ‘얼굴’, 배우와 인물에 오래 머물고 싶다면 ‘파과’다. 가족과 함께 웃고 뭉클해지고 싶으면 ‘좀비딸’, 무게 있는 역사극에 집중하고 싶으면 ‘하얼빈’이 자연스럽다.
수상 결과도 선택에 참고는 된다. 하지만 상은 한 해의 평가이고, 관람 만족은 그날의 취향과 컨디션에도 달려 있다. 제46회 후보 다섯 편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 가지 기준으로 줄 세우기 어려울 만큼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게 좋은 후보 명단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영화부터 틀어주는 목록이 아니라, 지금 보고 싶은 이야기를 더 또렷하게 고르게 해주는 지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