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미드 추천을 부탁받고 취향부터 물었다

얼마 전 친구가 로맨스 미드 추천을 부탁했는데, 작품 이름보다 먼저 물은 건 “지금 가볍게 웃고 싶어, 아니면 오래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좋아?”였다. 같은 로맨스라도 설레는 속도와 갈등의 무게가 꽤 다르다. 1000편 넘게 보다 보니 평점보다 그날의 기분에 맞춰 고른 작품이 끝까지 보기 좋았다. 아래 여섯 편은 첫 만남의 설렘, 청춘의 흔들림, 일과 사랑 사이의 고민을 서로 다른 온도로 보여준다. 이야기의 출발점만 소개하고, 관계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남겨두겠다.
대화가 잘 맞는 두 사람을 보고 싶다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Nobody Wants This)은 연애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팟캐스트 진행자 조앤과 랍비 노아가 만나는 작품이다. 둘의 첫 대화부터 호흡이 좋아서, 로맨스의 시작을 기다리느라 여러 회를 견딜 필요가 없다. 시즌 1은 10부작. 말장난과 어색한 가족 모임을 웃으며 볼 수 있지만, 서로의 생활과 신념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묻는다. 설렘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심심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거운 드라마는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맞는다.
반대로 《대시 앤 릴리》는 상대를 직접 만나기 전의 기대감을 오래 즐긴다.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대시와 좋아하는 릴리가 뉴욕 곳곳에 빨간 노트를 남기며 대화를 이어간다. 8부작이라 주말 한 번에 보기 좋고, 서점과 겨울 거리의 분위기가 이야기만큼 큰 몫을 한다. 인물의 현실적인 연애 고민보다 동화 같은 우연과 따뜻한 기분을 원할 때 고르겠다. 두 작품 모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시리즈지만, 시청 전에는 국내 서비스 화면에서 제공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첫사랑의 들뜸과 피로를 함께 보고 싶다면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은 여름마다 같은 해변을 찾던 벨리가 오랜 친구인 형제 콘래드, 제러마이아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이야기다. 햇빛과 음악 덕분에 가볍게 시작하지만, 인물들의 감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좋아하는 마음이 서로의 속도와 맞지 않을 때 생기는 서운함까지 보여준다. 팀을 골라 응원하는 재미가 있다면 잘 맞고, 삼각관계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다른 작품부터 고르는 게 낫다. 프라임 비디오 오리지널 시리즈다.
《제인 더 버진》은 연애만 따라가기보다 한 사람의 삶에 깊이 들어가고 싶을 때 권한다. 작가를 꿈꾸는 제인의 계획이 뜻밖의 임신으로 흔들리고, 사랑과 가족, 일에 관한 선택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출발점은 비현실적이지만 제인과 어머니, 할머니가 서로를 대하는 장면에는 생활감이 있다. 텔레노벨라 특유의 과장된 사건과 급격한 전환을 즐긴다면 긴 호흡도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조용하고 현실적인 로맨스를 찾는 밤에는 그 빠른 전개가 피곤할 수 있다.
연애만큼 자기 일이 중요한 인물을 원한다면
《영거》의 라이자는 출판계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취직한다. 연애 상대를 향한 감정도 흥미롭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순간이 더 오래 남는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 세대 차이, 비밀을 지키는 압박이 로맨스와 나란히 움직인다. 여러 시즌에 걸쳐 인물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 짧은 주말용보다는 오래 볼 시리즈를 찾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설정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억지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그보다 훨씬 가벼운 쪽이다. 미국에서 파리로 옮겨 온 에밀리가 새 직장과 인간관계에 적응하는 동안 로맨스가 얽힌다. 화려한 옷과 거리 풍경, 빠른 대화가 강점이다. 직장 생활이나 파리 생활의 사실성을 기대하면 걸리는 장면이 있겠지만, 피곤한 날 화면의 색감과 경쾌한 사건을 따라가고 싶다면 제 역할을 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작품이다.
오늘 밤 한 편을 고르는 기준
시작이 빠른 성인 로맨스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짧고 포근한 이야기는 《대시 앤 릴리》가 좋다. 첫사랑의 흔들림을 견딜 마음이 있으면 《내가 예뻐진 그 여름》, 연애 밖의 가족 이야기까지 오래 보고 싶다면 《제인 더 버진》으로 간다. 일과 사랑이 함께 움직이는 이야기는 《영거》, 복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맞는다. 세부 사건이나 마지막 선택은 일부러 적지 않았다. 로맨스는 누가 누구를 택하는지 미리 아는 것보다, 그 선택에 이르는 표정을 직접 보는 편이 재미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