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영화 추천을 부탁받고 다시 골라봤다

영화를 오래 보다 보니 “원작이 더 좋아, 리메이크가 더 좋아?”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사실 어느 쪽이 낫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같은 이야기도 배우의 표정과 배경이 바뀌면 전혀 다른 기분으로 남는다. 리메이크 영화 추천을 부탁받았을 때 내가 먼저 묻는 것도 평점이 아니라 지금 보고 싶은 분위기다. 긴장하고 싶은지, 울고 싶은지, 아니면 낯선 장르에 발을 들이고 싶은지에 따라 고를 작품이 달라진다.
아래 네 편은 원작을 먼저 보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줄거리의 큰 반전이나 마지막 장면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어떤 사람에게 맞고, 어떤 기분일 때는 미뤄두는 편이 좋은지 적었다.
범죄극의 압박감을 원한다면 디파티드
마틴 스코세이지의 디파티드(2006)는 홍콩 영화 무간도(2002)를 미국 보스턴의 범죄 세계로 옮긴 작품이다. 경찰 조직에 숨어든 범죄 조직원과 범죄 조직에 잠입한 경찰. 두 사람이 서로의 정체를 찾는 설정만 들어도 긴장이 생긴다. 무간도가 군더더기 없이 달려가는 편이라면, 디파티드는 인물들이 쌓아 올린 불안과 거친 대화에 더 오래 머문다.
나는 이 영화를 반전을 맞히려고 볼 때보다, 들킬까 봐 잠도 제대로 못 잘 것 같은 두 사람의 얼굴을 따라갈 때 더 재미있게 봤다. 등장인물이 많고 욕설과 폭력이 거칠게 나온다. 가벼운 수사물을 찾는 밤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두 시간 넘게 이어지는 심리전과 배우들의 기세를 즐긴다면 만족도가 높다. 두 작품을 이어 볼 생각이라면 먼저 무간도를 보고, 같은 설정을 디파티드가 얼마나 다르게 밀어붙이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가족과 함께 볼 영화를 찾는다면 코다
코다(2021)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2014)를 다시 만든 작품이다. 청각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듣는 딸 루비가 가족의 일과 자신의 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설명만 들으면 눈물을 짜내는 영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가족끼리 농담하고 다투는 장면이 먼저 살아 있어, 루비의 선택도 단순한 희생 이야기로 흐르지 않는다.
특히 가족이 루비에게 의지하는 마음과 루비가 자기 삶을 원하는 마음을 둘 다 이해하게 만든다. 누군가 한쪽을 양보하면 끝나는 갈등이 아니라서 오래 남는다. 코다는 음악 영화가 부담스러운 사람도 비교적 편하게 볼 만하다. 노래 경연의 승패보다 가족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다시 찾는 과정에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족의 책임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미뤄본 사람이라면 몇 장면이 예상보다 아프게 닿을 수 있다.
노래가 감정을 끌고 가는 영화라면 스타 이즈 본
스타 이즈 본(2018)은 1937년 영화에서 출발해 여러 차례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의 최신 영화판이다. 무명 가수 앨리와 유명 음악가 잭슨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의 음악과 삶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익숙한 이야기인데도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무대 위에서 주고받는 시선 덕분에 지금 처음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로맨스보다 음악이다. 공연 장면에서 목소리와 관객의 함성이 감정을 먼저 밀어 올린다. 노래가 끝난 뒤에는 두 사람이 무대 밖에서 서로에게 기대는 방식도 보인다. 화려한 성공담을 기대하면 후반부가 무겁다. 관계의 불균형과 중독 문제가 이어지므로 기분을 환하게 바꾸고 싶은 날보다는 진한 음악 드라마를 볼 여유가 있을 때 권한다. 음악 영화 한 편을 고른다면 내 손이 자주 가는 작품이다.
조용히 서늘한 공포가 좋다면 렛 미 인
렛 미 인(2010)은 스웨덴 영화 렛 미 인(2008)을 미국에서 다시 만든 작품이다. 국내 제목이 같아 검색할 때는 연도를 함께 보는 편이 편하다. 외로운 소년이 이웃에 이사 온 소녀와 가까워지는 이야기지만, 둘 사이의 친밀함을 편안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소녀에게는 숨겨진 사정이 있고, 영화는 그 사실을 서두르지 않고 드러낸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을 연달아 보고 싶다면 다른 공포 영화가 더 맞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춥고 적막한 공간에서 두 아이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믿어도 되는지 망설이게 하는 분위기에 있다. 폭력 장면이 있어 잔잔한 성장 영화로 생각하고 고르지는 않았으면 한다. 원작의 절제된 기운이 궁금하다면 2008년판도 이어서 볼 만하다. 비슷한 장면이 어떻게 다른 온도로 다가오는지 느껴진다.
네 편 중 처음 한 편만 골라야 한다면, 함께 보는 사람까지 생각했을 때는 코다를 권하겠다. 혼자 몰입할 밤이라면 디파티드가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리메이크의 재미는 원작과 점수를 겨루는 데만 있지 않다. 익숙한 이야기가 다른 장소와 목소리를 만나 내 취향에 새로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