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로맨스 드라마 추천을 부탁받고 네 편을 다시 골랐다

얼마 전 친구가 일본 로맨스 드라마를 보고 싶다며 제목 하나만 골라 달라고 했다. 막상 떠올려 보니 같은 로맨스라도 원하는 감정은 꽤 다르다. 실컷 울고 싶은 밤이 있고, 가볍게 웃으며 설레고 싶은 밤도 있다. 그래서 이번 일본 로맨스 드라마 추천은 별점 순서 대신 보고 난 뒤 남는 기분을 기준으로 골랐다. 네 작품 모두 관계가 시작되는 설정까지만 이야기한다. 그 뒤의 전개와 결말을 짐작하게 할 내용은 뺐다.
오래된 첫사랑을 다시 꺼내고 싶다면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미츠시마 히카리와 사토 타케루가 주연인 넷플릭스 시리즈다. 십 대에 만난 야에와 하루미치의 이야기가 20여 년에 걸쳐 이어진다. 현재의 두 사람을 먼저 보여주고 과거를 오가는 방식이라, 첫 회부터 모든 사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대신 한 장면의 표정이나 음악이 몇 회 뒤에 다른 의미로 돌아오는 재미가 있다.
이 작품이 좋은 건 첫사랑을 무조건 아름다운 기억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른이 된 뒤의 일상에는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쌓여 있다. 그래서 눈 내리는 풍경과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가 낭만적으로 느껴지다가도, 인물의 선택 앞에서는 마음이 묵직해진다. 감정을 빠르게 확인하는 로맨스보다 시간을 들여 인물의 삶까지 따라가고 싶은 사람에게 맞는다. 반대로 첫 회부터 통통 튀는 연애를 기대한다면 호흡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작품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말보다 침묵이 오래 남는 이야기를 원한다면 사일런트
후지TV의 2022년 드라마로,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츠무기와 소우가 8년 만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이 헤어진 뒤 소우는 청력을 잃었다. 이 설정을 반전처럼 소비하기보다, 다시 만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시간을 쓴다. 총 11부작이다.
로맨스에서 대화가 중요하다는 말은 흔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대화가 꼭 목소리로만 이루어지는지 묻는다. 상대의 말을 기다리는 시간, 알아듣지 못했을 때의 표정, 손을 움직이기 전에 망설이는 순간이 감정의 일부가 된다. 특히 주인공 둘만 응원하면 끝나는 구도가 아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보이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밀어낼 수 없다. 잔잔한 화면 안에서 감정이 크게 움직이는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잘 맞을 것이다. 밝은 연애담이 필요한 날에는 조금 버거울 수 있다.
가볍게 설레고 싶다면 아이 러브 유
2024년 TBS에서 방영한 10부작 로맨스다. 유리는 눈을 마주치면 상대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한국어로 생각하는 태오를 만난다. 평소에는 피하고 싶던 눈맞춤이 이 사람 앞에서는 궁금한 일이 된다는 출발이 귀엽다. 니카이도 후미와 채종협의 서로 다른 말투와 반응도 초반의 설렘을 살린다.
첫사랑의 긴 여운이나 이별 뒤의 상처보다, 지금 막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기분에 집중하고 싶을 때 고르기 좋다. 초능력 설정은 부담 없이 이야기에 들어가게 해 주지만, 판타지의 규칙을 촘촘하게 따지는 취향이라면 후반부의 전개가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하루가 길었던 저녁에 한 편씩 보기에는 네 작품 중 가장 밝은 쪽이다. 국내 OTT 제공 여부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재생 전에 서비스 안에서 제목을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설렘에 생활감도 있었으면 한다면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은 미쿠리가 가사 일을 하던 히라마사에게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설정만 들으면 익숙한 동거 로맨스 같지만, 이 드라마의 재미는 두 사람이 집안일을 노동으로 대하는 태도에 있다. 함께 사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돈, 배려를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서로를 의식한다. TBS가 소개하는 본편은 11부작이다.
아라가키 유이와 호시노 겐의 어색한 거리감이 웃음을 만들고, 두 인물이 조금씩 관계의 규칙을 바꿔 가는 과정이 설렘을 만든다. 달콤한 장면만 이어지는 작품을 기대하면 현실적인 대화가 의외일 수 있다. 반대로 연애하는 두 사람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도 궁금하다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넷플릭스에는 작품 페이지가 있지만 지역에 따라 시청할 수 없다는 안내가 표시될 수 있으므로, 구독 중인 서비스에서 현재 제공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지금 마음에 맞는 한 편을 고르는 법
네 작품 중 하나만 고른다면 보고 싶은 감정부터 정하면 쉽다. 지난 사랑의 여운을 천천히 따라가고 싶으면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조용한 장면에서 깊은 감정을 느끼고 싶으면 사일런트가 좋다. 지친 날 가볍게 설레고 싶다면 아이 러브 유를, 웃으면서도 관계의 현실을 생각하고 싶다면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로맨스를 볼 때 두 사람이 이어지는지보다, 만나고 난 뒤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이 네 작품은 그 답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끼리도 서로 다른 작품을 가장 아끼게 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