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틴 미드 추천을 부탁받고 다섯 편을 골랐다

얼마 전 친구가 가볍게 볼 하이틴 미드를 골라 달라고 했다. 막상 목록을 적으려니 ‘가볍다’는 말부터 애매했다. 누군가는 설레는 첫사랑을 원하고, 누군가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를 원한다. 1000편 넘게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건, 하이틴 장르는 별점보다 지금 보고 싶은 감정에 맞춰 골라야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스포일러 없이 다섯 편을 추렸다.
웃으면서 시작하고 싶다면 네버 해브 아이 에버
가장 먼저 권할 작품은 넷플릭스의 <네버 해브 아이 에버>다. 주인공 데비는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지만, 감정이 앞서 일을 꼬이게 만들곤 한다. 친구와 가족, 연애 사이에서 허둥대는 모습이 때로는 민망하고 때로는 무척 친숙하다. 시즌은 네 개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실수한 주인공을 지나치게 멋있게 포장하지 않는 데 있다. 데비가 잘못하면 주변 사람도 상처받고, 그 관계를 다시 풀어 가는 데 시간이 든다. 그래서 빠른 농담과 연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의 상실감이나 부모와 자녀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발랄한 학원물을 찾되 인물에게도 정을 붙이고 싶은 사람에게 맞는다.
다만 데비가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장면은 꽤 많다. 주인공에게 처음부터 공감해야 재미를 느끼는 편이라면 초반에는 답답할 수 있다. 그 어수선함까지 성장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면 훨씬 즐겁다.
설렘의 온도를 올리고 싶다면 내가 예뻐진 그 여름
여름방학, 오래 알고 지낸 두 형제, 달라진 자신의 모습. 프라임 비디오의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은 익숙한 재료를 망설임 없는 로맨스로 엮는다. 벨리가 가족과 함께 해마다 찾던 해변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사랑의 작은 표정과 어색한 침묵을 오래 바라보는 작품이다.
이쪽은 사건의 치밀함보다 계절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저녁 바다와 파티, 친구 사이에서 달라지는 시선이 쌓이면서 ‘그 여름엔 모든 게 크게 느껴졌다’는 감각을 만든다. 인물들의 선택에 속이 타더라도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삼각관계와 청춘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다섯 편 중 가장 먼저 손이 갈 만하다.
반대로 우유부단한 인물이나 반복되는 엇갈림에 쉽게 지친다면 호불호가 갈린다. 특히 연애가 이야기의 중심이라, 학교생활 자체를 자세히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른 작품이 더 잘 맞는다.
오래 머물 동네가 필요하다면 길모어 걸스
<길모어 걸스>를 하이틴 미드로만 부르기에는 조금 아깝다. 십대 로리의 학교생활과 진로 고민이 중요한 축이지만, 엄마 로렐라이와 작은 마을 스타즈 할로의 사람들도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원작은 일곱 시즌이다. 짧게 몰아보기보다 마음에 드는 동네를 오래 찾아가는 기분으로 보는 편이 어울린다.
모녀가 빠르게 주고받는 말과 마을 사람들의 반복되는 일상이 이 작품의 리듬이다. 시험이나 연애 문제로 하루가 무너진 것 같다가도, 익숙한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어진다. 자극적인 사건보다 관계의 변화를 천천히 보는 사람, 가족 이야기가 섞인 성장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솔직히 요즘 드라마의 속도를 기대하면 초반이 느릴 수 있다. 대사도 상당히 빠르다. 대신 몇 편 지나 인물의 말투가 익숙해지면, 다음 사건보다 그 사람들이 또 어떻게 이야기할지가 궁금해진다.
학교에 다른 장르가 섞이면 웬즈데이와 유포리아
하이틴의 배경은 좋아하지만 로맨스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웬즈데이>가 있다. 네버모어 아카데미로 간 웬즈데이가 기묘한 사건을 파고드는 이야기다. 학교 안의 경쟁과 우정 위에 판타지와 미스터리를 얹었다. 주인공의 건조한 유머가 중심을 잡아서, 달콤한 분위기보다 까칠한 인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넷플릭스에서 작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유포리아>는 같은 십대 이야기라도 훨씬 무겁다. 화려한 화면과 음악이 눈을 붙잡지만, 그 안에서 다루는 것은 중독과 불안, 상처 입은 관계다. 인물의 감정을 편안한 거리에서 구경하기 어렵다. 강한 연출과 불편한 감정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된 성인 시청자에게 권한다. 약물 사용과 성적 표현 등 자극적인 장면이 있으니, 가볍게 쉬려고 틀 작품은 아니다.
이 두 편을 나란히 놓으면 취향이 더 선명해진다. <웬즈데이>는 미스터리를 따라가며 학교의 낯선 세계를 즐기는 쪽이고, <유포리아>는 인물의 불안한 내면을 가까이서 보는 쪽이다. 친구에게 하이틴 미드 추천을 할 때도 나는 먼저 이 차이를 묻는다.
오늘 밤 부담 없이 한 편을 시작한다면 <네버 해브 아이 에버>, 여름의 설렘이 필요하다면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이 좋겠다. 오래 곁에 둘 인물들을 만나고 싶을 때는 <길모어 걸스>가 떠오른다. 같은 학교 이야기라도 보고 난 뒤 남는 기분은 꽤 다르다. 그래서 하이틴 미드는 나이보다 지금 마음의 온도에 맞춰 고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