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작 드라마 영화 네 편을 보고 취향별로 골랐다

얼마 전 친구가 소설 원작 작품을 하나 보고 싶다면서 제목보다 먼저 이렇게 물었다. “원작을 안 읽어도 재미있어?” 영화와 드라마를 오래 보다 보니, 그 질문이 별점보다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의 줄거리를 얼마나 충실히 옮겼는지보다 화면에서 무엇을 새로 느낄 수 있는지가 선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래 네 편은 모두 원작을 몰라도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꽤 다르다. 주요 반전과 결말은 언급하지 않는다.
인물과 오래 함께 있고 싶다면 파친코
이민진의 소설을 옮긴 드라마 <파친코>는 선자와 그 가족의 시간을 따라간다. 한 사람의 선택이 다음 세대의 삶에 어떻게 남는지 보는 작품이다. 드라마는 서로 다른 시대를 오가며 장면을 잇는다. 그래서 초반에는 인물의 관계와 시간대를 붙잡는 데 조금 집중해야 한다. 대신 어느 시점의 표정을 본 뒤 이전 시점의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빠른 사건 전개보다 인물이 견뎌 온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는다. 가족 이야기나 이주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찾는다면 특히 그렇다. 반대로 한두 회 안에 갈등이 시원하게 풀리길 기대하면 느리게 다가올 수 있다. 내 기준에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한 회씩 보는 편이 감정의 무게가 잘 전해지는 드라마다. 애플 TV의 작품 안내에서도 여러 세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로 소개한다.
말 사이의 침묵이 좋다면 노멀 피플
샐리 루니의 소설이 원작인 <노멀 피플>은 메리앤과 코넬의 관계를 학교에서 대학 시절까지 따라간다. 훌루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12부작이다. 회차가 길지 않아 시작하기 쉽지만, 연애의 달콤한 순간만 기대하고 틀면 마음이 제법 피곤해질 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면서도 자신이 놓인 자리와 불안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이 작품을 추천할 때는 “둘이 왜 그냥 대화하지 않느냐”는 답답함을 감수할 수 있는지 먼저 묻는다. 그 답답함이야말로 관계의 실감에 가깝기 때문이다. 원작의 내면 묘사를 드라마가 표정과 침묵으로 바꿔 놓은 순간들이 좋다. 큰 사건보다 미묘한 감정 변화를 따라가는 취향이라면 12회가 짧게 느껴질 것이다. 친밀한 장면과 우울한 감정 표현이 부담스러운 날에는 다른 작품을 먼저 고르는 편이 낫다.
두 시간 남짓에 기분 좋은 여운을 원한다면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의 2019년 영화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고전을 바탕으로 한다. 소니 픽처스의 작품 소개처럼 조의 삶을 중심에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처음에는 “지금이 언제지?” 싶을 수 있지만, 자매들이 함께 있는 장면의 온도와 각자가 원하는 삶의 차이를 따라가면 흐름이 잡힌다.
네 자매를 모두 같은 방향으로 밀어 넣지 않는 점이 좋다. 조에게 공감했다가 에이미의 선택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의 꿈이 다른 사람의 꿈보다 크다고 쉽게 말하기 어려워진다. 원작을 읽은 사람은 시간 순서를 바꾼 구성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처음 만나는 사람은 한 가족의 성장 영화로 즐길 수 있다. 차분한 위로나 따뜻한 대화를 원하지만 마냥 가벼운 영화는 싫은 날에 잘 맞는다.
세계에 완전히 잠기고 싶다면 듄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드니 빌뇌브의 <듄>은 앞의 세 작품과 고르는 기준이 다르다. 인물에게 금방 친해지기보다 낯선 행성의 규모와 소리, 권력 관계를 천천히 익혀야 한다. 처음부터 모든 이름과 세력을 외우려 들면 피곤하다. 폴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닥쳤는지만 붙잡아도 첫 영화의 흐름은 따라갈 수 있다.
화면과 음향에 집중할 환경이 있다면 만족도가 높다. 정치와 종교가 얽힌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히 권한다. 반면 한 편 안에서 이야기가 모두 끝나길 바란다면 첫 영화를 보기 전에 <듄: 파트 2>까지 이어 볼 시간을 생각해 두는 편이 좋다. 제작사 레전더리도 두 영화를 허버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속된 이야기로 소개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설명을 모두 이해한 다음보다, 낯선 세계의 크기를 먼저 체감할 때 더 빨리 온다.
오늘의 기분으로 한 편 고르기
오래 붙들 인물이 필요하면 <파친코>, 관계의 미세한 흔들림을 보고 싶으면 <노멀 피플>이다. 영화 한 편으로 따뜻한 여운을 얻고 싶다면 <작은 아씨들>, 큰 화면의 감각에 빠지고 싶다면 <듄>이 맞는다. 소설 원작 드라마 영화를 고를 때 ‘책을 먼저 읽어야 하나’는 걱정은 잠시 미뤄도 된다. 보고 난 뒤 원작을 펼치면 화면에서 지나쳤던 마음이 보일 때도 있다.
OTT에서 찾을 때는 같은 제목의 다른 각색작이 있는 <작은 아씨들>처럼 제작 연도와 출연진을 함께 확인하는 게 편하다. 제공 서비스와 대여 여부는 지역과 시점에 따라 달라지니 재생 전에 이용 중인 앱에서 확인하면 된다. 내게 좋은 각색은 책을 대신해 주는 작품이 아니라, 익숙한 이야기라도 인물을 다른 거리에서 다시 보게 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