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어 페르소나를 알고 배우를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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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어 페르소나를 알고 배우를 다시 봤다

영화를 오래 보다 보면 배우의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인상이 있다. 송강호가 등장하면 평범한 사람의 얼굴로 웃기다가도 어느 순간 서늘한 감정을 보여줄 것 같고, 어떤 배우는 배역이 달라도 화면에 들어서는 순간 특유의 긴장감을 만든다. 작품을 천 편 넘게 보면서 이런 감각을 설명할 말이 필요했는데, 그때 유용했던 영화 용어가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작품 속 이름 하나를 뜻하지 않는다

페르소나는 본래 가면이나 바깥에 드러나는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영화 이야기에선 누가 어떤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관객이 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설명할 때 쓰인다. 그래서 한 작품의 배역 이름과는 구별해야 한다. 배우는 영화마다 다른 인물을 연기하지만, 관객은 이전 작품에서 본 표정과 말투, 홍보나 인터뷰에서 접한 이미지까지 들고 극장에 들어간다.

가령 늘 믿음직한 인물을 맡던 배우가 수상한 역할로 나오면, 관객은 그가 첫 대사를 하기 전부터 의심과 신뢰 사이에서 흔들린다. 감독은 그 익숙한 이미지를 이용할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 페르소나를 알면 캐스팅이 왜 그 자체로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지 보인다. 같은 대사를 다른 배우가 말했다면 장면의 온도가 달라졌을 거라는 느낌도 여기서 나온다.

배우의 페르소나와 배역은 겹치지만 같지는 않다

배우의 페르소나는 여러 작품을 거치며 쌓인 화면 속 이미지에 가깝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송강호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그는 <살인의 추억>에서 수사하는 형사였고, <괴물>에선 가족을 구하려는 아버지였으며, <기생충>에선 부유한 집에서 운전하는 가장이었다. 직업도 처지도 다르다. 그런데 인물의 허술함과 절박함을 한 얼굴에 담아내는 방식은 관객에게 익숙한 기대를 만든다.

그렇다고 송강호의 모든 배역을 같은 사람처럼 읽으면 놓치는 게 많다. <살인의 추억>의 형사와 <기생충>의 가장은 각자 다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페르소나는 작품을 읽는 실마리이지, 배우를 하나의 성격으로 가두는 딱지가 아니다. 제가 영화를 고를 때도 ‘이 배우가 나오니 늘 비슷하겠지’에서 멈추지 않고, 익숙한 이미지가 이번에는 어떻게 쓰이는지를 본다.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말은 조금 더 조심해서 듣는다

영화 기사에서 ‘누구는 어느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표현도 자주 만난다. 대개는 여러 작품을 함께하며 감독의 세계를 인상적으로 구현한 배우를 가리킨다. 하지만 출연 횟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감독의 생각을 대신 말하는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오래 함께한 배우라도 작품마다 맡은 기능은 달라진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의 협업이 좋은 예다. <괴물>에선 가족의 혼란과 애정을, <기생충>에선 계층 사이에 쌓이는 불편함을 그의 연기가 가까이 끌어온다. 두 영화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른 만큼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소개를 봤다면 어느 작품의 어떤 장면에서 그 관계가 드러나는지 확인하는 편이 재미있다. 반복되는 배우를 알아보는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감독이 이번에는 그 얼굴에 무엇을 맡겼는지 볼 수 있어서다.

같은 이름의 영화 <페르소나>를 볼 때

영화 용어를 찾다가 잉마르 베리만의 1966년 영화 <페르소나>를 만날 수도 있다. 영국영화협회가 소개하는 기본 설정은 말을 멈춘 배우 엘리사베트와 그를 돌보는 간호사 알마의 만남이다. 제목처럼 드러내는 얼굴과 숨기는 마음,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다만 이 영화 한 편이 일상적으로 쓰는 ‘배우의 페르소나’라는 표현의 뜻 전부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스포일러 없이 권하자면, 사건의 답을 또렷하게 알려주는 영화를 기대하는 날보다 인물의 표정과 침묵을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날에 어울린다. 흑백 화면과 실험적인 구성도 취향을 탄다. 반대로 페르소나라는 말을 가볍게 익히고 싶다면 이미 본 배우의 다른 작품 두 편을 이어 보는 쪽이 훨씬 편하다. 익숙한 얼굴이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는 순간, 그 말이 사전의 뜻보다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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