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 추천 로맨스 네 편을 다시 골라봤다

얼마 전 친구가 중국 로맨스 영화 한 편만 골라 달라고 했다. 슬픈 영화는 괜찮지만 답답한 오해로 시간을 끄는 이야기는 싫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목록을 다시 펼쳤다. 같은 로맨스라도 첫사랑의 설렘, 헤어진 뒤의 후회, 조용한 기다림, 어른들의 연애는 보는 날의 기분부터 다르다. 아래 네 편은 그런 차이가 선명한 작품들이다. 중요한 반전이나 마지막 장면은 건드리지 않았다.
헤어진 사람보다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울 때, 먼 훗날 우리
2018년 영화 <먼 훗날 우리>는 기차에서 만난 두 사람이 베이징에서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시간을 따라간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한 장면과 젊은 날의 장면이 번갈아 나오는데, 이 구성이 꽤 오래 마음에 남는다. 과거의 두 사람을 보고 나면 현재의 짧은 대화가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잘 맞는 사람은 연애를 둘만의 감정으로 떼어 놓고 보지 않는 사람이다. 좁은 방, 일자리, 돈 걱정 같은 것들이 관계의 온도를 조금씩 바꾼다. 누구 하나를 쉽게 탓할 수 없어서 더 아프다. 반대로 기분 좋게 끝나는 데이트 영화를 찾는 밤이라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친구에게 한 편만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먼저 그 사람이 지금 따뜻한 위로를 원하는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현재 한국 넷플릭스 작품 페이지에서도 <먼 훗날 우리>라는 제목으로 확인된다. 다만 OTT 제공 여부는 바뀔 수 있으니 보기 직전에 검색하는 편이 정확하다. 스포일러는 피하고 싶다면 재회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감상글도 관람 뒤로 미뤄 두는 게 좋다.
첫사랑 영화의 익숙한 맛이 당길 때, 여름날 우리
<여름날 우리>는 2021년 중국 영화다. 수영을 하는 남학생과 전학 온 여학생의 만남에서 시작해 약 15년에 걸친 관계를 그린다. 한국 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 출발점이 익숙할 수 있다. 그런데 배우의 표정과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의 리듬은 또 다른 맛이 있다. 원작을 봤다면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찍었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생긴다.
이 작품은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성인이 된 뒤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는다. 첫눈에 반한 순간 하나로 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동안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우연한 재회가 반복되는 전개에 쉽게 지치는 사람이라면 몰입이 흔들릴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사건의 개연성을 하나씩 따지기보다, 오래 좋아했던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움과 어색함이 함께 오는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제목과 홍보 이미지 때문에 가벼운 청춘 로맨스를 예상하기 쉽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의 무게가 커진다. 밝은 학창 시절 장면만 기대하고 틀었다면 뒤쪽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마지막 관계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말보다 기다림이 크게 들릴 때, 산사나무 아래
장이머우 감독의 2010년 영화 <산사나무 아래>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 농촌에 간 젊은 여성이 한 청년을 만나고, 둘의 마음이 조심스럽게 자라난다. 앞의 두 영화가 도시 생활 속 사랑을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시대와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마음을 표현하는 일부터 쉽지 않은 사랑을 그린다.
요즘 로맨스의 빠른 대사와 화려한 사건이 버겁다면 이 영화의 느린 걸음이 반가울 수 있다. 눈길을 한 번 더 주는 일, 곁을 지키는 일이 대사 몇 줄보다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편안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시대적 압박이 두 사람의 선택에 스며들고, 감정도 차분하게 쌓인다. 첫사랑을 예쁘게만 포장한 작품을 원한다면 기대와 조금 다를 수 있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된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의 이름보다도 나는 두 인물이 마음을 서두르지 않는 방식 때문에 이 영화를 기억한다. 감정이 크게 터지는 장면을 기다리기보다, 그 전까지 쌓이는 침묵을 따라가면 좋다.
첫사랑 말고 어른들의 대화가 보고 싶을 때, 애정신화
2021년 영화 <애정신화>는 상하이를 무대로, 중년의 미술 교사 라오바이와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여성들의 관계를 그린다. 세 작품을 지나 여기로 오면 공기가 확 바뀐다. 사랑에 빠지는 단 한순간보다, 이미 삶의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 무슨 말을 하고 어디까지 가까워지는지가 중요해진다. 상하이의 골목과 식탁 풍경도 이야기의 일부처럼 남는다.
이 작품은 첫사랑의 순수함보다 관계의 말맛을 즐기는 사람에게 권한다. 인물들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움직여서 누군가의 연애를 응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서로를 보는 방식까지 지켜보게 된다. 조용한 대화가 이어지는 영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초반은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대신 인물 사이의 거리감이 조금씩 바뀌는 과정을 좋아한다면 네 편 중 가장 신선할 것이다.
친구에게는 결국 <먼 훗날 우리>를 골라 줬다. 돈과 시간 때문에 달라지는 관계를 보고 싶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같은 중국 로맨스라도 어떤 날에는 <여름날 우리>의 긴 첫사랑이, 또 어떤 날에는 <애정신화>의 여유 있는 대화가 더 잘 들어온다. 좋은 추천은 유명한 한 편을 찍는 일보다, 지금 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의 온도를 맞추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