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어 영국 드라마 결말을 보고 로라를 다시 생각했다

드라마를 오래 보다 보면 범인을 알아낸 순간 마음이 편해지는 작품이 있고, 그때부터 더 복잡해지는 작품이 있다. 영국 드라마 <라이어>는 후자였다. 시즌 1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는 앤드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했는데, 시즌 2까지 보고 나니 로라가 그 뒤에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오래 남았다.
스포일러 경고: 아래에는 시즌 1과 시즌 2의 범인, 사망 경위, 마지막 장면까지 담겨 있다. 성폭력과 약물을 이용한 범죄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첫 데이트 뒤 두 사람의 말은 왜 엇갈렸나
교사 로라 닐슨은 외과의사 앤드루 얼햄과 데이트를 한다. 분위기는 좋았지만 다음 날 로라는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가 있었다고 말한다. 앤드루는 이를 부인한다. 두 사람 외에는 그날 밤을 본 사람이 없고 로라의 기억에도 빈틈이 있어, 주변 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흔들린다.
여기서 작품이 확정하는 사실은 분명하다. 앤드루가 로라의 술에 약물을 넣고 성폭력을 저질렀다. 처음 몇 회의 의심스러운 장면들이 피해자의 말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증거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평판이 좋은 의사의 말이 얼마나 쉽게 힘을 얻는지 보여준다. 앤드루의 직업과 차분한 태도는 그가 한 일을 지워 주지 않는다.
로라가 경찰에 신고하고 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서는 동안 앤드루는 계속 빠져나간다. 수사에 참여한 바네사 하먼마저 그의 피해자가 된다. 로라가 때로 위험하고 무리한 선택을 하는 이유도 이 과정에서 이해된다. 다만 답답함을 이해하는 것과 그 선택을 모두 옳다고 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 미묘한 간격이 <라이어>를 단순한 범인 찾기보다 오래 보게 만든다.
시즌 1 마지막에 발견된 앤드루는 누구에게 죽었나
로라는 앤드루가 숨겨 둔 메모리카드를 찾아낸다. 그 안에는 로라 자신을 포함한 여성 17명을 성폭행한 영상이 있다. 이제 그의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생겼지만, 경찰이 체포하러 갔을 때 앤드루는 이미 사라진 뒤다. 시간이 흐른 후 갈대밭에서 목이 베인 시신으로 발견된다. 시즌 1은 살인범을 밝히지 않고 끝난다.
시즌 2가 내놓는 답은 로라다. 하지만 앤드루를 찾아가 미리 살해한 이야기는 아니다. 도망칠 계획을 세우던 앤드루는 옛 지인 올리버 그레이엄을 끌어들여 자신의 죽음을 꾸미고 로라에게 살인 혐의를 씌우려 한다. 자신의 피와 로라의 물건으로 가짜 현장을 만들고, 약물까지 준비한다. 로라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면서 계획이 어긋난다.
두 사람은 몸싸움 끝에 갈대밭으로 들어간다. 앤드루가 로라를 쫓고 칼을 빼앗으려는 상황에서 로라는 그의 목을 벤다. 화면이 보여주는 것은 공격을 피하려는 사투다. 그런데 로라는 곧장 경찰에 알리지 않는다. 여러 차례 제도가 자신을 지켜 주지 못했다고 느낀 사람이 왜 침묵을 택했는지는 이해되지만, 그 침묵 때문에 사건의 진실은 다시 다른 사람의 거짓말에 휘말린다.
올리버가 범인으로 지목된 까닭
앤드루가 죽은 뒤에도 올리버는 로라에게 혐의를 씌우는 일을 이어 간다. 앤드루의 차 열쇠를 로라의 집에 숨기고, 경찰 로리 맥스웰을 협박해 로라의 차량 기록까지 조작한다. 수사망이 로라 쪽으로 좁혀지는 이유다. 시즌 2를 볼 때는 ‘누가 칼을 휘둘렀나’와 ‘누가 증거를 꾸몄나’를 나눠서 보면 헷갈리지 않는다.
로라와 주변 사람들은 올리버가 앤드루와 연결돼 있었다는 흔적을 찾아낸다. 로리도 자신이 협박당해 한 일을 인정한다. 결국 올리버는 체포되고 앤드루 살인 혐의까지 받는다. 그러나 시청자가 본 실제 사망 장면에서 칼을 휘두른 사람은 로라다. 올리버에게 성폭력과 협박에 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과 그가 앤드루를 직접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함께 남는다.
담당 형사 캐런 렌턴은 로라를 의심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 로라는 자유롭게 돌아간다. 그러니 마지막을 ‘모든 진실이 법정에서 밝혀진 장면’으로 기억하면 작품의 불편한 지점이 사라진다. 시청자는 진상을 알고 있고, 수사기관이 확인한 사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다 보고 나면 누구에게 권하고 싶나
<라이어>는 시즌마다 여섯 편이다. 첫 시즌은 한 번의 데이트에서 시작된 진술 대립이 어떻게 주변 사람들의 판단까지 바꾸는지 따라간다. 두 번째 시즌은 앤드루의 죽음을 둘러싼 수사와 과거 장면을 오가며 정보를 조금씩 채운다. 빠른 반전과 범인 추적을 좋아한다면 몰입하기 쉽다. 반면 성폭력 장면과 피해자를 향한 의심이 불편하다면 가볍게 틀 작품은 아니다.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범인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보다 로라가 다시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이다. 앤드루의 위협은 끝났지만, 자신이 숨긴 일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이제 시작된다. 그 표정을 보고 나니 이 드라마의 끝을 통쾌하다고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