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호스 나인을 고르다 두 배우에게 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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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호스 나인을 고르다 두 배우에게 눈이 갔다

영화를 1000편 넘게 보다 보니 새 작품을 고를 때 줄거리보다 배우의 조합을 먼저 보는 날이 있다. 《와일드 호스 나인》은 존 말코비치와 샘 록웰의 이름에서 눈이 멈췄다. 여기에 《킬러들의 도시》와 《이니셰린의 밴시》를 만든 마틴 맥도나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독한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기대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이 영화가 누구에게나 가벼운 오락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이스터섬에 간 두 요원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배경은 1973년 칠레의 군사 쿠데타를 앞둔 시기다. CIA 요원 크리스와 리는 상관 MJ의 지시로 산티아고를 떠나 이스터섬, 지금의 라파누이로 향한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아는 듯하지만 각자 감춘 속내가 있다. 크리스는 은퇴를 앞두고 회고록을 준비하고, 리에게는 그를 감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섬에서 크리스가 칠레 출신 대학생들과 가까워지면서 여행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여기까지가 스포일러 없이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다. 모아이 석상이 서 있는 섬은 휴양지처럼 보이지만, 두 요원이 떠나온 칠레에서는 큰 정치적 사건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도 마냥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 듯하다. 총격과 추격을 이어가는 첩보물보다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과 서로를 향한 의심에 관심이 간다.

말코비치와 록웰의 대화가 기대되는 이유

맥도나의 영화에서는 인물이 엉뚱한 말을 길게 늘어놓다가도 어느 순간 가장 아픈 사실을 건드린다. 《킬러들의 도시》에서는 브뤼헤에 머무는 두 킬러의 관계가 그랬고, 《이니셰린의 밴시》에서는 친구 사이의 단절이 그랬다. 《와일드 호스 나인》 역시 오래 함께한 두 남자를 중심에 놓는다. 다만 이번에는 그들이 CIA 요원이고, 수십 년간 해온 일을 돌아봐야 하는 처지다.

존 말코비치가 맡은 크리스는 말이 많고 속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인물로 소개된다. 샘 록웰의 리는 그런 동료와 동행하면서 감시 임무까지 수행해야 한다. 한쪽이 무슨 말을 꺼낼지 알 수 없고 다른 쪽은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는 관계다. 두 배우가 이 불편한 거리를 어떻게 채울지가 관람 포인트다. 씨네21은 이 작품을 존 말코비치의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으로 소개하고 있다.

스티브 부세미가 상관 MJ를 맡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크리스와 리의 여행이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물 배치만으로 보여준다. 두 요원의 우정에 끌려 영화를 고르더라도, 그들이 속한 조직과 칠레의 상황을 함께 보게 될 작품이다.

이런 취향이라면 잘 맞고, 이런 기대라면 다를 수 있다

《킬러들의 도시》의 대사와 씁쓸한 웃음이 좋았다면 우선순위에 올릴 만하다. 친한 사람이 서로에게 진실을 숨길 때 생기는 긴장, 잘못을 저지른 인물이 뒤늦게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맞겠다. 맥도나 감독의 전작을 몰라도 인물 관계를 따라가는 데 필요한 설정은 복잡하지 않다.

반대로 촘촘한 작전과 빠른 액션을 기대한다면 116분이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제 소개와 공개된 줄거리가 강조하는 것도 임무의 성공 여부보다 기억, 죄책감, 두 사람의 관계다. 블랙코미디라는 말만 듣고 가벼운 웃음을 예상하는 경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웃기는 대사 옆에 폭력과 정치적 비극이 놓이는 종류의 영화다. 취향이 맞으면 그 간극이 오래 남겠지만, 편하게 쉬려고 고른 밤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극장과 OTT 중 어디서 볼까

국내에서는 2026년 11월 4일 극장 개봉했고, 씨네21 기준 상영시간은 116분, 관람등급은 15세 이상이다. 현재 국내 OTT 공개 일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스트리밍을 기다리고 있다면 작품 페이지에 다른 지역의 서비스명이 표시되더라도 국내 제공 여부를 따로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나는 이 영화를 고를 때 ‘새로운 첩보 액션’보다 ‘오래된 동료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끝내 하지 못했을까’에 마음을 두겠다. 《와일드 호스 나인》은 두 배우의 대화를 따라가며 웃다가도,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곱씹게 될 것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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