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4회까지 보고 나니 이용우보다 이기범이 더 무서워졌다

얼마 전 <허수아비> 4회를 보고 나서, 범인을 맞히는 재미보다 더 오래 남은 건 이기범이라는 인물의 온도였습니다. 드라마가 분명 이용우라는 이름을 앞에 세워두고 달리는데, 4회가 끝날 즈음엔 이상하게 시선이 이기범에게 더 오래 머물더군요. 이 글은 4회 주요 장면을 다루기 때문에 아직 보지 않았다면 스포일러를 조심하는 편이 좋습니다.
4회가 재미있는 이유는 범인 맞히기가 아니라 시선 싸움이다
<허수아비>는 1회 2.9%로 출발해 4회 5.2%까지 올라간 작품입니다.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오른다는 건, 단순히 소재가 자극적이라서만은 아닙니다. 보통 범죄 스릴러는 초반에 사건을 세게 던지고 중반에 힘이 빠지기 쉬운데, 이 드라마는 오히려 4회에서 인물 간 압박이 더 촘촘해졌습니다.
특히 4회는 이용우라는 이름과 이기범이라는 얼굴 사이의 간격을 계속 흔듭니다. 이미 작품은 이용우를 강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처럼 제시합니다. 그런데 화면 안에서 직접 의심을 받는 쪽은 이기범에 가깝죠. 여기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이용우가 곧 이기범인가, 아니면 이기범은 누군가를 가리기 위한 허수아비인가.
이 지점이 꽤 영리합니다. 드라마 제목이 그냥 상징처럼 붙은 게 아니라, 인물 배치 방식 자체가 허수아비처럼 작동합니다. 누군가를 세워두고, 시선을 그쪽으로 몰아넣고, 진짜 움직이는 존재는 어둠 속에 남겨둡니다.
이용우vs이기범, 진짜 대결은 정체가 아니라 서사의 주도권이다
많은 분들이 ‘이용우vs이기범 대결’이라고 말하지만, 4회 기준으로 두 사람이 정면으로 맞붙는 느낌보다는 이름과 이미지가 충돌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이용우는 아직 실체보다 기록, 증언, 공포의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반대로 이기범은 행동과 표정,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의심을 끌어당깁니다.
이기범 쪽에 놓인 단서들은 꽤 노골적입니다. 피해자의 가방, 김민지의 그림을 본 뒤의 반응, 손수건을 둘러싼 의심까지 이어지면 시청자가 그를 범인 후보로 보지 않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너무 대놓고 의심스럽다는 점이 오히려 걸립니다. 범죄 수사물에서 이렇게 초반부터 모든 화살표가 한 사람을 향하면, 그 인물은 진범이라기보다 진실로 가는 입구일 때가 많습니다.
이용우는 이름만으로도 무겁습니다. 드라마가 처음부터 그 이름을 ‘진범’의 자리와 연결해두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회에서 중요한 건 이용우가 누구냐보다, 왜 이기범이 그 이름을 대신 뒤집어쓰는 것처럼 보이느냐입니다. 이기범은 범인일 수도 있고, 공범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4회의 설계는 그를 단순한 미끼로만 소비하지 않습니다.
강순영의 선택이 4회의 감정선을 바꾼다
4회에서 이기범을 둘러싼 긴장감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강순영입니다. 강순영이 이기범을 숨겨주고 함께 도주를 계획했다는 흐름은, 단순한 로맨스 장치라기보다 사건의 감정적 무게를 확 끌어올리는 선택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의심을 밀어내는 사람, 혹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도 외면하는 사람의 얼굴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서지원이 손수건 단서를 떠올리는 장면도 좋았습니다. 손수건은 작은 물건인데, 이 드라마 안에서는 관계와 범죄를 동시에 연결하는 물증처럼 쓰입니다. 강순영이 직접 자수를 놓은 물건이라는 점 때문에 단서는 더 사적이고 더 불편해집니다. 살인의 흔적이 생활의 물건과 겹치는 순간, 스릴러는 갑자기 훨씬 가까운 공포가 됩니다.
이런 장면 때문에 <허수아비>는 잔혹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단순히 범인의 잔인함만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모른 척하는지가 사건의 또 다른 얼굴이 됩니다.
박해수와 이희준의 공조가 늦게 시작된 것도 장점이다
4회에서 강태주와 차시영의 공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런 장르에서 두 형사가 빨리 손잡으면 수사는 시원하게 굴러가지만, 감정의 마찰은 얕아질 수 있습니다. <허수아비>는 반대로 두 사람의 오해와 상처를 먼저 쌓아둔 뒤,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게 만듭니다.
강태주는 사건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고, 차시영은 냉정해 보이지만 자기만의 상처와 오해를 안고 있는 인물입니다. 4회에서 두 사람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공조는 단순한 수사 파트너십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위험한 동행이 됩니다. 그래서 같은 단서를 봐도 두 사람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고, 그 차이가 장면에 긴장을 만듭니다.
방송 말미, 차시영이 수풀 속에서 범인과 맞서고 강태주가 피를 흘린 강순영을 안고 나오는 그를 마주하는 장면은 꽤 강합니다. 액션이 화려해서라기보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인물들이 서로의 가장 나쁜 순간을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맞는 사람, 조금 피곤할 수 있는 사람
<허수아비> 4회까지의 흐름은 빠른 사이다 수사극을 원하는 분보다는, 의심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는 심리 추적극을 좋아하는 분에게 더 잘 맞습니다. <살인의 추억>식 농촌 범죄의 불쾌한 공기, <괴물>처럼 인물들의 과거가 사건과 맞물리는 구조, 그리고 이름 하나를 두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꽤 몰입할 만합니다.
- 추천: 범인보다 인물 관계와 심리전을 더 중요하게 보는 시청자
- 추천: 단서 하나를 두고 여러 해석을 붙이는 추리형 감상을 좋아하는 시청자
- 비추천: 매회 명확한 답이 나오고 수사가 빠르게 해결되는 드라마를 원하는 시청자
- 주의: 연쇄살인, 실종, 폭력 수사 분위기에 예민하다면 부담이 있을 수 있음
4회의 이용우vs이기범 구도는 아직 승부가 난 싸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용우라는 이름이 만든 공포와 이기범이라는 인물이 끌어안은 의심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단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4회를 보고 나서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누가 누구의 허수아비로 세워졌는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이 드라마가 끝까지 힘을 유지한다면, 진짜 재미는 범인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보다 그 얼굴을 보기 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속았는지를 깨닫는 순간에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