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상 기생충을 다시 보니 달랐다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는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숨 가쁘게 따라갔다. 다시 보니 눈에 들어오는 건 인물들이 서 있는 자리였다. 같은 서울에 살지만 누군가는 반지하 창문으로 거리를 올려다보고, 누군가는 넓은 거실 창으로 정원을 바라본다. 아카데미 작품상 기생충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뒤에도 이 영화가 계속 이야기되는 이유는, 그 거리가 설명보다 장면으로 먼저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상을 알고 봐도 이야기가 먼저 움직인다
기생충은 2020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기록상 후보는 6개 부문, 수상은 4개 부문이다. 비영어 영화로는 처음 작품상을 받았다는 기록도 크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틀면 수상 경력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 일자리를 구하는 기우가 박 사장 가족의 집에 들어가면서 두 가족의 생활이 맞물린다. 출발점은 단순하고, 인물이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 작품을 ‘어려운 사회 영화’로만 예상했다면 의외일 수 있다. 초반에는 가족이 손발을 맞추는 과정에 웃음이 있고, 중반부터는 들키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붙는다. 장르가 바뀌는 듯한 순간에도 인물의 선택은 앞서 본 생활과 이어져 있다.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뒤늦게 자신이 웃었던 장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두 집의 높낮이가 오래 남는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건 영화 속 공간이다. 기택 가족의 반지하는 바깥을 보려면 시선을 올려야 하는 곳이고, 박 사장 가족의 집은 계단을 올라가야 닿는다. 이동하는 길의 기울기까지 두 가족의 처지를 보여준다. 대사로 형편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어디에서 어디로 걷는지를 지켜보게 한다.
그렇다고 부유한 가족을 단순한 악역으로 세우지도 않는다. 박 사장 가족은 대체로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자신들이 가진 편안함이 다른 사람의 시간과 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에는 둔감하다. 기택 가족 역시 무조건 응원하기 어려운 선택을 한다. 이 애매함이 좋다. 어느 한쪽을 판정하고 끝낼 수 있었다면 관람 뒤 대화도 이렇게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과 ‘냄새’처럼 영화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도 귀에 남는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계가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짚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볼 때는 사건의 순서보다, 누가 누구 앞에서 말을 고르고 표정을 바꾸는지에 시선이 갔다. 이미 내용을 아는 관객에게도 다시 볼 이유가 생기는 지점이다.
누구에게 권하고 누구에게는 망설일까
촘촘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잘 맞는다. 복선이 놓이는 방식이 분명해서 첫 관람에는 전개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고, 재관람에는 앞 장면의 의미가 달라지는 재미가 있다. 웃기다가 불안해지는 블랙코미디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상을 받은 영화라서 의무감으로 보기보다, 긴장감 있는 가족 이야기 한 편을 고른다는 마음이 더 잘 맞는다.
반대로 가볍게 웃고 끝낼 작품이 필요한 날에는 망설여진다. 후반부의 긴장과 폭력 묘사는 꽤 강하고, 보고 난 뒤의 기분도 산뜻하지 않다. 가족과 함께 볼 때도 각자의 취향을 생각하는 편이 좋다. 어린 관객과 편하게 즐길 영화를 찾는다면 다른 선택이 나을 수 있다.
OTT에서 찾는다면 서비스 이름만 보고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현재 제공 여부와 관람 등급을 확인하면 된다. 제공 작품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화면 속 계단과 창문이 이야기를 많이 전하는 영화라, 가능하면 작은 화면보다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환경을 권한다.
스포일러 없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여기까지는 큰 반전과 후반부의 사건을 밝히지 않았다. 기생충은 줄거리 설명을 미리 많이 읽을수록 첫 관람의 재미가 줄어드는 편이다. 인물 관계가 궁금하더라도 예고편과 짧은 소개 정도에서 멈추는 게 좋겠다. 이 글에서도 이후 사건의 의미를 자세히 풀지 않은 이유다.
첫 관람 뒤에는 누가 옳았는지보다 각 인물이 무엇을 당연하게 여겼는지 이야기해 보면 좋다. 내게는 수상 기록보다 그 대화가 오래 남았다. 시간이 지나 다시 틀어도 웃음이 멈추는 순간이 달라지는 영화라, 이미 본 사람에게도 한 번 더 권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