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드라마 한국 작품 넷을 다시 골라봤다

좀비물을 여러 편 보고 나면 괴물이 얼마나 무서운지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버티는지가 오래 남는다. 한국 좀비 드라마도 그렇다. 같은 감염 사태를 다뤄도 조선의 권력 다툼, 학교의 혼란, 아파트 주민의 불신, 연인을 만나러 가는 소동은 전혀 다른 재미를 준다. 넷 중 무엇을 먼저 볼지 망설이는 사람을 위해 취향별로 골랐다.
아래 내용은 각 작품의 시작 설정까지만 다룬다. 감염의 비밀이나 인물의 생사는 밝히지 않으니 스포일러가 걱정된다면 그대로 읽어도 괜찮다. 다만 네 작품 모두 피와 공격 장면이 있으며, 무서움을 느끼는 지점은 조금씩 다르다.
긴장감에 정치극까지 원한다면 킹덤
《킹덤》을 처음 봤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좀비가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조선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병든 왕을 둘러싼 소문과 세자를 향한 의심이 쌓이는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역병이 백성 사이로 번진다. 살아남는 일과 권력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 동시에 움직여서 한쪽만 보고 있을 틈이 없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본편은 두 시즌이다. 회차가 비교적 짧게 끊겨 있어 사극의 인물 관계가 부담스러운 사람도 흐름을 따라가기 좋다. 특히 좀비가 몰려올 때의 박력과 조용한 궁중 장면의 대비가 선명하다. 반면 가벼운 생존극을 기대하면 권력 다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사극을 좋아하지만 판타지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사람, 혹은 좀비물에서 이야기의 밀도를 중시하는 사람에게 먼저 권한다. 잔혹한 장면도 제법 있으니 피가 보이는 화면이 힘들다면 첫 선택으로 삼기는 어렵다.
숨 돌릴 틈 없는 탈출극을 원한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
《지금 우리 학교는》은 감염이 시작된 고등학교에 학생들이 갇히면서 출발한다. 교실과 복도처럼 익숙한 공간이 순식간에 위험해지는 감각이 강하다. 《킹덤》이 멀리서 밀려오는 위협을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바로 옆자리의 친구를 바라보는 불안을 붙잡는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시즌 1은 12화다. 학생들이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장애물이 생겨 몰아보기에는 좋지만, 감정적으로는 꽤 지친다. 살아남으려는 행동이 늘 현명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그 미숙함이야말로 어른이 아닌 학생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살린다. 인물의 선택에 답답함을 잘 느끼는 시청자라면 이 점이 호불호를 가를 수 있다.
빠른 추격전과 또래 사이의 우정, 갈등을 함께 보고 싶을 때 맞는다. 학교 폭력과 강한 유혈 표현이 불편하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스포일러 없이 말하자면, 이 드라마의 긴장은 좀비가 얼마나 빠른가보다 누구를 믿고 함께 움직일 수 있는가에서 더 오래 이어진다.
괴물보다 이웃이 더 신경 쓰인다면 해피니스
《해피니스》의 무대는 감염병이 퍼지는 신축 아파트다. 고층의 일반 분양 세대와 저층의 임대 세대가 나뉜 건물이라는 설정부터 관계가 평온하지 않다. 감염 위기가 닥치자 주민들은 문을 잠그고 서로를 살핀다. 바깥의 위험을 피하려 모인 공간이 안쪽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이 작품의 묘미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계속 달리는 드라마라면 《해피니스》는 멈춰 서서 옆집 사람의 말을 의심하게 만든다. 누가 감염됐는지 못지않게 누가 정보를 숨기는지, 누구의 안전을 먼저 챙기는지가 중요해진다. TVING의 작품 소개도 아파트 안의 계급 차별과 신경전을 이야기의 한 축으로 짚고 있다.
좀비의 규모나 화려한 액션보다 밀폐된 공간의 심리전을 좋아한다면 이쪽이다. 반대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좀비 떼를 기대한다면 앞의 두 작품이 더 잘 맞을 것이다. 감염을 대하는 주민들의 태도가 현실의 갈등을 떠올리게 해, 보고 난 뒤에도 장면 몇 개가 마음에 남는다.
무서운 장면 사이에 웃을 틈이 필요하다면 뉴토피아
《뉴토피아》는 좀비에 습격당한 서울에서 군인 재윤과 사회 초년생 영주가 서로에게 가려는 이야기다. 쿠팡플레이의 작품 소개부터 두 사람의 만남을 중심에 둔다. 그래서 생존 자체에만 매달리는 작품보다 로맨스와 소동의 비중이 크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엇나가는 움직임이 웃음을 만들기도 한다.
좀비 장르를 보고 싶지만 내내 무겁고 절망적인 분위기는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어울린다. 다만 코미디가 섞였다고 잔혹한 화면까지 순해지는 것은 아니다. 웃음과 유혈 장면이 붙어 있는 톤이 취향에 맞는지가 관건이다. 진지한 정치극을 기대한다면 《킹덤》 쪽이 훨씬 만족스러울 것이다.
지금 한 편을 고른다면 이야기의 짜임을 중시할 때는 《킹덤》, 속도감을 원할 때는 《지금 우리 학교는》, 사람 사이의 불편한 긴장을 보고 싶을 때는 《해피니스》, 숨 쉴 틈이 있는 장르물을 찾을 때는 《뉴토피아》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좀비를 보고도 결국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 작품에 다시 손이 간다. 그런 면에서 네 작품은 무서움의 모양만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