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나티 노래를 드라마처럼 들어봤더니, 취향이 갈리는 지점이 보였다

얼마 전 플레이리스트를 넘기다가 빅나티 노래가 연달아 나왔는데, 이상하게 한 편의 청춘 드라마를 몰아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랩으로 시작한 아티스트인데 장면을 만드는 방식은 꽤 드라마적입니다. 대사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애매하게 남은 표정 하나로 감정을 넘기는 타입에 가깝습니다.
빅나티, 본명 서동현은 2019년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먼저 알려졌고 이후 하이어뮤직 소속으로 활동 폭을 넓혔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가 흔히 말하는 강한 래퍼 이미지로만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힙합, 알앤비, 팝, 발라드의 경계를 꽤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요즘 청춘의 말투’를 음악으로 번역하는 쪽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빅나티가 유독 드라마 팬에게 잘 맞는 이유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사람 입장에서 빅나티 음악의 장점은 감정선이 빠르게 잡힌다는 데 있습니다. 긴 서사가 없어도 첫 소절에서 인물의 상태가 보입니다. 고백 직전인지, 헤어진 뒤인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중인지가 비교적 선명합니다.
특히 ‘Beyond Love’, ‘Vancouver’, ‘Romance Symphony’ 같은 곡은 장르적으로는 알앤비와 팝의 결이지만, 듣는 경험은 로맨스 드라마의 한 장면에 가깝습니다. 막장처럼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차갑게 숨기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잔잔한 로맨스나 청춘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습니다.
- 대사보다 분위기로 감정을 읽는 작품을 좋아한다면 잘 맞습니다.
- 첫사랑, 후회, 미련 같은 감정을 과하게 울리지 않는 음악을 찾는 사람에게 좋습니다.
- 힙합의 리듬감은 좋아하지만 센 톤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입문용으로 무난합니다.
대표곡을 작품 취향으로 고르면
빅나티를 처음 듣는다면 노래를 인기순으로만 고르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영상 취향에 맞춰 들어보는 편이 훨씬 잘 들어옵니다. 이 아티스트는 곡마다 주인공의 나이와 감정 온도가 조금씩 다릅니다.
‘Beyond Love’는 로맨스 드라마의 중반부
10CM가 함께한 ‘Beyond Love’는 빅나티를 넓은 대중에게 각인시킨 곡에 가깝습니다. 이 곡은 고백 장면보다 고백 직후의 공기와 닮았습니다. 이미 마음은 기울었는데, 아직 관계의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풋풋한 캠퍼스 로맨스나 서로의 마음을 늦게 알아차리는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먼저 들어도 좋습니다.
‘Vancouver’는 이별 뒤 혼자 걷는 장면
‘Vancouver’는 감정이 더 차분합니다. 눈물을 크게 터뜨리는 노래라기보다, 이미 울 만큼 울고 난 뒤에 남은 멍한 시간을 건드립니다. 영화로 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주인공이 낯선 도시의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이별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히 잘 맞습니다.
‘Love Letter’는 판타지 로맨스의 여운
드라마 ‘환혼’ OST로 알려진 ‘Love Letter’는 빅나티의 목소리가 화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떤 힘을 내는지 보여주는 곡입니다. 판타지 로맨스 OST는 자칫하면 감정이 너무 커져서 장면을 덮어버리는데, 이 곡은 비교적 부드럽게 따라갑니다. 서사가 큰 작품의 여운을 오래 붙잡고 싶은 사람에게 맞습니다.
좋아할 사람과 조금 안 맞을 사람
빅나티의 음악은 선명한 기승전결보다 감정의 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잘 맞습니다. 사건이 크게 터지는 음악보다, 마음이 조금씩 기울고 무너지는 순간을 잡는 쪽입니다. 그래서 빠른 카타르시스만 기대하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상 취향이 ‘나의 해방일지’, ‘그 해 우리는’, ‘멜로가 체질’처럼 인물의 말투와 공기감을 오래 따라가는 쪽이라면 빅나티의 음악은 꽤 자연스럽게 들어옵니다. 감정이 덜 설명된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보컬과 랩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재미있게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 추천 취향: 청춘 로맨스, 잔잔한 이별물, 감성적인 OST, 대사 중심 드라마
- 주의 취향: 강한 비트의 정통 힙합만 원하는 경우, 폭발적인 고음 발라드를 기대하는 경우
- 입문 순서: ‘Beyond Love’ 이후 ‘Vancouver’, 그다음 ‘NANGMAN’ 앨범 흐름으로 들어가면 좋습니다.
OTT 감성으로 보는 빅나티의 매력
요즘 OTT에서 잘 먹히는 음악은 단순히 귀에 꽂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장면과 붙었을 때 인물의 속마음을 대신 말해줘야 합니다. 빅나티의 장점은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너무 어른스럽게 굴지도 않고, 너무 어린 척하지도 않습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감정이 가진 어설픔과 솔직함을 꽤 정확하게 건드립니다.
솔직히 빅나티의 모든 곡이 모든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꽂히는 타입은 아닙니다. 어떤 곡은 비슷한 온도로 흘러간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취향이 맞는 사람에게는 그 일정한 온도가 오히려 장점입니다. 비 오는 날 몰아보는 로맨스 드라마처럼, 크게 흔들지 않는데 어느 순간 마음에 남습니다.
빅나티를 단순히 ‘쇼미 출신 래퍼’로만 알고 지나쳤다면 조금 아깝습니다. 지금의 그는 랩과 보컬 사이에서 자기만의 청춘 멜로를 쓰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인물의 말보다 침묵을 먼저 보는 사람이라면, 그의 노래가 생각보다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