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7분 기립박수 현장, 설경구·조인성 눈물이 말해준 ‘가능한 사랑’의 진짜 온도

영화제 소식을 오래 보다 보면 박수 시간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번 베니스에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7분 안팎의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소식도 컸지만, 솔직히 제 시선은 설경구와 조인성이 눈물을 훔쳤다는 장면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배우가 공식 상영 뒤 울었다는 말은 흔한 홍보 문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쉽게 지나가는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떠올리면 알 수 있죠. 보고 나서 바로 감상을 말하기보다, 며칠 뒤 문득 장면이 돌아오는 영화들입니다.
7분 기립박수보다 중요한 건 어떤 영화에 쏟아졌느냐입니다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처음 공개됐습니다. 현지시간 9월 6일, 메인 상영관인 살라 그란데에서 월드 프리미어가 열렸고, 1032석 규모의 객석이 가득 찬 자리에서 상영 후 긴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습니다.
해외 영화제에서 기립박수 시간은 종종 기사 제목으로 소비됩니다. 5분, 7분, 10분 같은 숫자는 확실히 눈에 잘 들어오니까요. 다만 영화제 박수는 작품성의 절대 지표라기보다 현장의 온도에 가깝습니다. 초청 부문, 감독의 명성, 배우들의 참석 여부, 상영관 분위기까지 함께 작동합니다.
그런데도 이번 반응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라는 맥락 때문입니다. <버닝> 이후 오랜 공백을 지나 나온 작품이고, 베니스 경쟁 부문이라는 무대에서 공개됐습니다. 게다가 설경구는 <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에 이창동 감독과 베니스의 기억을 다시 잇게 됐습니다. 배우가 눈물을 보인 장면은 단순한 감격이 아니라 긴 시간의 압력이 한꺼번에 풀린 순간처럼 보입니다.
<가능한 사랑>은 어떤 이야기인가
알려진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해고 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남편 상우,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서로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설경구, 전도연, 조여정, 조인성이 중심을 잡고, 이창동 감독과 오정미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습니다.
스포일러 없이 말하면, 이 설정은 이창동 영화가 자주 다뤄온 질문과 잘 맞습니다. 사회적 사건이 개인의 내면을 어떻게 흔드는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행위가 과연 순수할 수 있는지, 사랑이라는 말이 현실의 조건 앞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같은 질문입니다.
특히 다큐멘터리 제작이라는 장치가 흥미롭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나뉘는 순간, 카메라는 공감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거리의 도구가 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관찰도 상대의 삶을 해석하고 편집하는 권력이 될 수 있죠. 이창동 감독이라면 이 불편한 지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설경구·조인성의 눈물이 유독 크게 느껴진 이유
설경구는 한국 영화에서 감정의 밑바닥을 몸으로 견디는 배우에 가깝습니다.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를 거치며 그는 인물이 무너지는 과정을 과장보다 체력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런 배우가 상영 뒤 눈물을 닦는 장면은 작품의 무게를 짐작하게 만듭니다.
조인성의 눈물도 의외라서 더 인상적입니다. 그는 스타 이미지가 강하지만, 좋은 감독을 만났을 때 얼굴의 결을 바꾸는 배우입니다. <더 킹>에서는 욕망의 속도를, <모가디슈>에서는 생존의 긴장을 보여줬죠. 이번 작품에서 상우라는 인물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는 아직 더 봐야겠지만, 이창동의 세계 안에서 조인성이 어떤 균열을 보여줄지는 분명 큰 관전 포인트입니다.
- 설경구를 좋아한다면: 감정이 폭발하기 전까지 쌓이는 침묵을 보는 맛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조인성의 다른 얼굴을 기다렸다면: 스타성보다 인물의 불안정함이 더 중요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 전도연의 생활 연기를 좋아한다면: 이창동 감독의 시선과 만나 가장 날카로운 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조여정의 섬세한 긴장을 좋아한다면: 관찰자와 당사자 사이의 애매한 경계가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잘 맞을 사람과 조금 힘들 수 있는 사람
<가능한 사랑>은 아마도 빠른 전개와 선명한 장르 쾌감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영시간이 164분으로 알려진 만큼, 인물의 관계와 침묵을 오래 따라가야 하는 영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건이 터지는 영화라기보다, 이미 터진 균열을 오래 들여다보는 영화에 가까워 보입니다.
반대로 인물의 표정, 대사의 빈칸, 관계의 윤리 같은 것을 곱씹는 관객이라면 꽤 깊게 들어갈 작품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관객을 친절하게 안내하기보다 불편한 자리에 앉혀두는 편입니다. 근데 그 불편함이야말로 오래 남는 힘이 되곤 합니다.
추천하고 싶은 관객
-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인물의 선택을 계속 생각하는 편인 사람
- <밀양>, <시>, <버닝>처럼 감정의 잔상이 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 배우 네 명의 밀도 높은 앙상블을 기대하는 사람
- 사회적 현실과 사적인 욕망이 부딪히는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
조금 망설여도 되는 관객
- 명확한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사람
- 느린 호흡의 대화 장면을 답답하게 느끼는 사람
- 인물의 도덕적 모호함을 오래 견디기 어려운 사람
OTT 공개작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가능한 사랑>은 넷플릭스 영화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지점도 꽤 중요합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이 영화제 프리미어를 거쳐 글로벌 플랫폼 관객에게 닿는다는 건, 한국 작가주의 영화의 관람 방식이 또 한 번 바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극장에서 숨죽여 봐야 제맛인 영화가 OTT로 넓게 퍼질 때 생기는 장단점은 분명합니다. 집중도는 줄어들 수 있지만 접근성은 훨씬 좋아집니다. 이창동 영화처럼 감상 후 대화가 필요한 작품은 오히려 공개 뒤 더 긴 생명력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관객이 같은 시기에 보고 각자의 현실로 해석하기 쉬우니까요.
베니스의 7분 기립박수는 이 영화의 시작에 가깝습니다. 진짜 평가는 관객들이 각자의 방, 극장, 노트북 앞에서 이 두 부부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설경구와 조인성이 흘린 눈물은 작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도장이라기보다, 이 영화가 적어도 만든 사람들에게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경험이었다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공개되면 서두르기보다, 방해받지 않을 시간을 따로 비워두고 보고 싶은 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