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 드라마 결말을 보고 혜주의 선택이 남았다

트롤리를 끝까지 보고 나니 마지막 장면보다 김혜주가 기자들 앞에 선 순간이 오래 남았다. 16회 동안 의심했던 사람은 여러 명이지만, 마지막에 가장 무거운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은 혜주다. SBS 드라마 트롤리는 사건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처럼 출발해, 진실을 알게 된 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아래부터는 15·16회의 핵심 반전을 포함한다. 아직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여기서 멈추는 편이 좋다.
남중도가 숨긴 일은 불륜이 아니었다
중반까지 남중도와 현여진의 관계는 불륜처럼 보인다. 아들 남지훈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후반부에 드러나는 진실은 훨씬 끔찍하다. 현여진은 5년 전 남중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남중도는 혜주가 믿어 온 다정한 남편이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가해자였다.
이 반전이 힘든 이유는 남중도의 공적인 얼굴 때문이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의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남궁솔법’을 추진한다. 혜주에게 자신의 아픈 과거를 공개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피해자를 위해 일한다는 사람이 정작 자기 범죄는 감추고 있는 셈이다. 박희순이 연기한 남중도는 선한 표정과 단단한 확신으로 그 모순을 끝까지 밀고 간다. 그래서 진실이 밝혀진 뒤 앞선 장면들이 다르게 보인다.
혜주는 왜 남편의 범죄를 직접 밝혔나
혜주에게는 침묵할 이유가 많았다. 남편의 일이 알려지면 딸 남윤서도 세상의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남궁솔법 추진 역시 무너질 수 있다. 자신도 20년 전 성범죄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가 가해자의 죽음 이후 거짓말쟁이이자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처럼 비난받았다. 공개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혜주 자신이 다른 피해자의 진실을 덮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남지훈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바로잡고, 남편이 5년 전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고 밝힌다. 아들을 성범죄자로 몰아간 거짓까지 인정해야 했으니 편한 선택일 리 없다. 그 장면의 힘은 혜주가 갑자기 두려움을 잃어서가 아니라, 두려운 채로 자신이 한 말과 남편의 행동을 바로잡는 데 있다.
딸 윤서는 처음에 폭로를 막으려 한다. 혜주도 아이가 겪을 고통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아이가 언젠가 선택의 순간을 맞았을 때 진실에서 도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족의 잘못을 숨겨야 한다는 의무와 같게 보지 않는 것이다.
속초 바다에서 남중도는 살아 돌아온다
혜주의 폭로 뒤 남중도는 정치인으로도 가장으로도 무너진다. 장우재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떠나던 그는 사라지고, 혜주는 두 사람이 함께 가기로 했던 속초 바다에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편을 발견한다. 혜주는 그를 구해 낸 뒤, 수치심을 안고 살아서 벌을 받으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남중도의 죽음으로 모든 갈등을 끝내지 않는다. 혜주가 오래 겪은 고통에는 가해자가 죽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기회마저 사라졌다는 점도 있다. 남중도에게 살아남아 죗값을 치르라는 말은 그런 과거와 맞닿아 있다. 이후 남중도는 자수하고 처벌을 받는다. 그렇다고 그의 죄가 깨끗이 씻긴 것처럼 그려지지는 않는다.
남궁솔법 개정은 무산된다. 혜주의 선택에 손실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드라마는 좋은 목적을 내세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범죄를 숨겨도 되는지 끝까지 묻는다. 제게는 그 질문이 법안의 성패보다 더 오래 남았다.
마지막 장면이 혜주에게 주는 자리
끝에는 현여진이 다시 살아갈 힘을 찾고, 혜주의 과거를 오해했던 진승희가 사과한다. 윤서도 시간이 지나 엄마의 선택을 이해한다. 김수빈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혜주 곁에 남는다. 모든 관계가 한꺼번에 회복되는 행복한 장면이라기보다, 각자가 진실을 알고 난 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장면에 가깝다.
이 작품은 빠르게 풀리는 추리극을 기대하면 답답할 수 있다. 인물들이 같은 사건을 두고 오래 망설이고, 성폭력과 피해자에게 향하는 비난을 반복해서 마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반전 자체보다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의 선택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볼 만하다. 김현주는 혜주가 흔들리는 시간까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마지막 미소도 모든 일이 괜찮아졌다는 뜻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혜주가 이제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표정에 더 가까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