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영화 추천을 부탁받고 다섯 편을 골랐다

얼마 전 친구가 크리스마스에 볼 영화를 골라 달라고 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연말 분위기는 나되, 보고 나서 시간을 아깝게 느끼고 싶지는 않다는 것. 영화를 고를 때는 별점보다 함께 보는 사람과 그날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같은 크리스마스 영화라도 온 가족이 웃고 싶은 밤과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은 밤에 맞는 작품은 다르니까.
그래서 크리스마스 영화 추천 목록을 다섯 편으로 좁혔다. 줄거리의 출발점만 소개하니 큰 스포일러는 없다. 다만 작품마다 웃음, 로맨스, 쓸쓸함의 비율이 꽤 다르다.
가족과 본다면 웃음의 종류부터 고른다
나 홀로 집에
가족에게 깜빡 잊힌 여덟 살 케빈이 빈집을 지키는 이야기다. 20세기 스튜디오가 안내하는 상영 시간은 1시간 42분. 설정만 들으면 걱정스러운데, 영화는 케빈의 기발한 대응을 빠른 몸개그로 밀어붙인다. 함께 보는 사람이 대사를 놓쳐도 웃을 장면이 많아 가족 모임의 첫 영화로 편하다.
다시 볼 때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케빈의 외로움과 집으로 돌아가려는 엄마의 마음이다. 그래서 어린이용 소동극으로만 남지 않는다. 다만 침입자들이 당하는 장면은 과장된 만화식 폭력이 반복된다. 아주 어린 아이와 볼 계획이라면 이 점은 미리 알고 고르는 편이 좋다.
클라우스
시끌벅적한 코미디보다 따뜻한 애니메이션을 원한다면 이쪽이다. 외딴 마을로 보내진 우편배달부 예스퍼가 장난감을 만드는 클라우스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산타의 익숙한 이미지를 다른 방향에서 풀어내지만, 그 장치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서로 말을 섞지 않던 사람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에 마음이 간다.
색감은 포근해도 초반의 마을은 꽤 냉랭하다. 처음부터 축제처럼 들뜬 영화를 기대하면 의외일 수 있다. 대신 마지막에는 작은 친절이 이어질 때 생기는 온기가 남는다. 아이와 함께 보되 어른도 자기 몫의 감정을 가져갈 작품을 찾을 때 잘 맞는다.
연인과 본다면 로맨스의 온도를 맞춘다
로맨틱 홀리데이
마음이 복잡한 두 여성이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서로 집을 바꿔 지낸다. 낯선 동네, 새로운 사람, 잠시 벗어난 일상이 로맨틱 코미디의 즐거움을 만든다. 이 영화가 편안한 이유는 연애만 바라보지 않아서다. 삶의 리듬을 바꾸고 자신에게 조금 다정해지는 시간이 이야기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대화하며 가볍게 보기보다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보기 좋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오가며 쌓아 가는 방식이라 호흡이 느긋한 편이다. 빠른 전개가 필요한 밤에는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쉬는 날의 저녁이라면 그 여유가 장점이 된다.
러브 액츄얼리
여러 사람의 사랑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차한다. 설레는 관계도 있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도 있다. 한 커플에게 깊이 몰입하기보다 짧은 이야기가 번갈아 주는 활기를 즐기는 영화다. 연말의 북적이는 공기와 음악을 원한다면 여전히 손이 간다.
다만 모든 이야기를 달콤한 연애담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불편하거나 씁쓸하게 남는 관계도 있고, 지금 보면 인물의 행동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장면도 있다. 그래서 취향이 갈리는 사람과 보기보다, 보고 난 뒤 어떤 이야기가 좋았는지 이야기할 상대와 볼 때 더 재미있다.
혼자 보내는 밤에는 더 조용한 영화를
바튼 아카데미
크리스마스 방학에도 기숙학교에 남아야 하는 학생과 그들을 돌보게 된 까다로운 교사가 중심에 있다. 반짝이는 거리보다 텅 빈 학교의 겨울이 먼저 보이는 영화다. Focus Features가 안내하는 상영 시간은 2시간 14분. 앞의 네 편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곧장 선물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함께 남겨진 사람들의 대화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외로움을 쉽게 지우거나 관계를 서둘러 따뜻하게 포장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유쾌한 축제 영화가 부담스러운 날, 차분한 농담과 묵직한 여운을 원한다면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상실을 다루는 만큼 가벼운 위로만 필요한 밤에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날의 기분으로 한 편만 고른다면
여럿이 모여 웃고 싶으면 나 홀로 집에,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볼 따뜻한 이야기를 찾으면 클라우스가 무난하다. 둘만의 느긋한 저녁에는 로맨틱 홀리데이, 보고 나서 사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러브 액츄얼리 쪽이다. 혼자 조용히 긴 영화를 볼 여유가 있다면 바튼 아카데미가 오래 남는다.
OTT 제공 여부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바뀌니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이용 중인 서비스에서 작품명을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내게 좋은 크리스마스 영화는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느냐보다, 그날 함께 보는 사람의 기분에 얼마나 잘 맞느냐로 결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