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드라마 시리즈를 골라봤더니 취향이 갈렸다

얼마 전 친구 둘에게 좀비 드라마를 추천했는데 반응이 정반대였다. 한 사람은 《킹덤》을 밤새 봤고, 다른 사람은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가 훨씬 재미있다고 했다. 좀비 드라마 시리즈를 고를 때 중요한 건 좀비의 속도보다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의 온도다. 권력 싸움, 친구들의 생존기, 숨 막히는 추격전, 기묘한 가족 코미디는 같은 장르 안에서도 꽤 다른 경험을 준다.
아래 내용은 작품의 기본 설정까지만 다룬다. 주요 인물의 생사와 반전은 밝히지 않지만, 설정 자체도 모르고 시작하고 싶다면 작품 이름과 취향 설명만 읽어도 충분하다.
사극의 긴장감까지 원한다면 《킹덤》
《킹덤》은 조선에 퍼진 역병과 왕실의 권력 다툼을 한꺼번에 밀어붙인다. 세자가 괴물을 피해 달리는 장면도 강하지만, 굶주린 백성과 닫힌 궁궐 사이의 거리가 더 오래 남는다. 누가 위험을 떠안고 누가 안전한 곳에 머무는지가 매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좀비물 팬에게만 추천하지 않는다. 사극이나 정치극을 좋아하는 사람도 들어갈 문이 있다.
넷플릭스에는 현재 시즌 2개가 안내돼 있다. 한 회가 대체로 40~60분대라 주말에 이어 보기 좋지만, 이야기가 계속 다음 회를 부르는 편이다. 시대 배경을 익히는 첫 회만 지나면 인물의 목표가 선명해진다. 다만 피가 튀는 장면과 잔혹한 상황이 적지 않다. 느긋한 궁중 사극을 기대했다면 초반부터 체감 속도가 다를 것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괴물이 등장하기 전에도 불안하다는 점이다. 백성을 살려야 할 사람들이 정보를 감추고, 살아남으려는 선택이 다시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린다. 빠른 액션에 이유 있는 갈등까지 바라면 네 작품 중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 버티는 이야기가 좋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
학교 복도와 교실은 원래 익숙한 공간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그 익숙함을 공포로 바꾼다.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나가기도, 어른의 도움을 기다리기도 쉽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 누굴 믿고 어디로 움직일지 계속 결정해야 한다. 좀비의 숫자보다 친구 사이의 판단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청춘극의 맛도 분명하다.
넷플릭스 작품 안내 기준으로 공개된 시즌은 1개다. 《킹덤》보다 한 회가 길고 인물도 많아서, 짧고 단단한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호흡이 늘어진다고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여러 학생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위기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 길이가 장점이 된다. 누군가는 앞장서고, 누군가는 겁에 질리고, 누군가는 자기만 살 궁리를 한다. 그 차이가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든다.
학교라는 배경 때문에 가벼운 하이틴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분위기는 꽤 거칠다. 감염 장면과 학생들이 위험에 놓이는 상황을 불편하게 느끼는 분이라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친구 관계에 감정이 실리는 좀비물을 찾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대화보다 추격의 압박을 원한다면 《블랙 썸머》
《블랙 썸머》를 볼 때는 인물 소개를 꼼꼼히 기다리기보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게 된다. 좀비가 나타나면 도망칠 길부터 찾게 만드는 드라마다. 피난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잠시 협력하지만, 안전하다는 확신은 좀처럼 주지 않는다. 한 공간을 빠져나오면 곧 다른 위험이 이어진다. 다른 세 작품보다 숨 돌릴 틈이 적다.
넷플릭스에는 시즌 2개가 올라와 있다. 한 회 길이가 20~40분대로 들쭉날쭉해서 긴 드라마를 시작하기 부담스러운 날에도 틀기 쉽다. 대신 인물의 과거와 관계를 길게 설명하는 방식은 아니다. 성격을 대사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생존을 위한 선택을 지켜보게 한다. 친절한 세계관 설명이나 든든한 팀워크를 기대하면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작품은 좀비가 무섭다기보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감각이 무섭다. 이어폰을 끼고 보면 발소리와 비명이 긴장을 더한다. 감상 후 오래 붙잡을 주제보다 보는 동안의 압박감을 원하는 날에 어울린다.
무서움 사이에 웃을 틈이 필요하다면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
좀비물이 보고 싶지만 몇 시간씩 우울해지고 싶지는 않은 날도 있다.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는 그럴 때 꺼내기 좋은 카드다. 평범한 부동산 중개업자 부부의 일상에 아내의 기이한 식성이 끼어든다. 세상이 무너지는 대재앙 대신, 가족이 이 이상한 비밀을 안고 어떻게 생활할지가 중심이다. 상황은 엉뚱한데 부부의 대화는 의외로 생활감이 있다.
넷플릭스에는 시즌 3개가 안내돼 있고, 한 회는 대체로 30분 안팎이다. 앞선 세 작품과 비교하면 부담 없이 한두 회 보기 좋다. 다만 코미디라고 해서 순한 작품은 아니다. 신체 훼손과 식사 장면을 엮은 짓궂은 농담이 많아 고어를 못 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다. 긴박한 도주보다 가족의 말다툼과 다크 코미디가 재미있는 사람에게 권한다.
넷플릭스에서 네 작품 모두 확인할 수 있지만, 공개 목록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나만 고른다면 사극과 서사가 끌릴 때는 《킹덤》, 인물들과 오래 버티고 싶을 때는 《지금 우리 학교는》, 긴장감이 우선일 때는 《블랙 썸머》, 기묘하게 웃고 싶을 때는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다. 제게 가장 오래 남은 건 《킹덤》의 굶주린 사람들이다. 좀비를 다 피한 뒤에도 그들의 사정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